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적한 신작로를 달리다보면 가끔 접할 수 있는 소리.
화이바 끝을 눈동자 높이로 내려쓴 헌병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버스 안을한 번 휘 둘러보고다시 깍듯하게 경례를 붙이더니, 바지통에 넣은 링소리와 함께 철컥 철컥내려간다.
겁나게 무시부러~^^
그들이 검문을 통해서 때때로 수상한 사람들을 잡아내는 것을 보면, 그래도 심리학 특히 범죄심리학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행동방식이 제법 신뢰도가 있는 모양이다.
아, 잘하고 있어요~ 계속 근무, 계속 근무. ^^
불심검문(不審檢問) 이란 무엇인가?
야후 백과사전에 의하면, "경찰관이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수사의 단서를 얻기 위하여 거동수상자를 정지시켜 질문하는 행위" 를 불심검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 31명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를 습격하기 위해 청와대 뒷산을 넘어오다 종로경찰서장의 불심검문 받자 그를 사살한 후군경과 총격전 끝에1명 생포, 2명 도주, 나머지 전원은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우리나라는 대북 경각심을 높이는 동시에, 새 주민등록증 발급한다, 향토예비군 창설한다, 휴전선에 철책을 설치한다 등 우리나라의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곳곳에 '간첩식별요령' 이 만들어져 배포되는데, 당시 민도가 워낙에 낮아서인지 (지금 보면)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실제 이 식별요령으로 인해 체포된 간첩도 제법 되는걸로 알고있다.
군대 제대 후 일자리를 걱정하던 우리 삼촌은 어느날 통신학원에 등록했다면서 가방 속에 자그마한 기계와 책을 넣어가지고 오셨다.
앗! 이건...????
바로 영화에서 간첩들이 또는 레지스탕스들이 사용하는......모르스통신기!!!
낮에는 무얼하시느라 바쁜지 집에 안계시다가 밤만 되면,
또..또....또또...또...또또... 00;;
다른 가족들이 잠자는데 방해가된다면서, 헤드폰까지 끼고 온 인상을 콧잔등으로 쏠리게 하고,
또...또또...또...또또...또... (우와~ --;;;)
"밤 늦게 라디오를 듣거나 무선신호기를 이용하여 교신하는 자!"
더더군다나 삼촌은 나와 같이 한방을 쓰면서, 밤마다 일일라디오드라마 '일제 삼십육년사' 그리고 이어서 '광복 이십년' 을 듣곤 했는데, 그 당시 다루어지던 내용이 간첩 이주하와 김삼룡에 대한 것으로 곧잘 모르스통신 소리가 나오곤 했다.
그러면 삼촌은 또 "나도 한 번 해봐야지" 하면서,
또...또...또또...또또...또...
초등학교 3학년생의 가슴은 밤마다 방망이질 쳐댔다.
어느날이고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하며 경찰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다행히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삼촌이한 달만에 포기하셨으니 망정이지,조금만 더 오래 그것이 지속되었다면 아마도 내 몸무게가 한 이십 킬로는 줄었을 것이다. ^^
1980년대는군사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각급 학교의 민주화 데모가 격렬했다.
학교 근처는 물론이고 종로나 광화문 등 곳곳에서 가담자 색출을 위한 불심검문이 행해졌는데, 화염병이나 불법유인물을 찾는 우리 또래의 전경들과의 승갱이는다반사였다.
"좀 보여달라니까요!"
"뭘 보여줘요?"
"그래서 지금 안열겠다는 겁니까?"
"아무 것도 없다는데 왜 그래요?"
전경은 안되겠네... 하면서 저 뒤에 있는 고참에게 부르려 한다.
아, 이건 아니다.
저 친구가오게 되면 닭장차(전경버스^^) 안으로 일단은 안내될 것이므로 여기서 꼬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 옳다.
"아, 봐요! 뭐책하고 도시락 밖에 없잖아요."
고참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큰 소리로 말하면서 가방을 벌컥 열어 뵈준다.
전경은가방을 거칠게 나꿔채서손을 가방 속으로 넣고 책들을 몇 번 뒤적이고 돌려준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불심검문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게 던지던 그 의심스러운 눈초리들이란......--;
'내가 뭘 잘못해서 검문을 받는 줄 알아?'
속으로 고함쳐보지만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지하도 입구에 좌판을 펼쳐놓은 할머니는 날 보며 혀까지 쯧쯧 찬다.
검문을 하는 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다수의 대중에 노출된 상태로 검문을받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까?
그 후부터 난 가방을 안들고, 책들과 노트만 손에 들고 다니게 된다.
이제 다시는 불심검문을 안받았겠지?
천만의 말씀!
정확히 일주일 후, 그들은 내 손에 들려있던 노트를 검색한다.
"아무 것도 없다니까요!"
신경질을 내는 나를, 그 전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미안합니다. 노트까지 체크하라는 상부의 지시라서요."
그 후부터 난 항상 책 한 두권만 가지고 다니는 노라리 학생이 되었다. ^^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간정권이 시작되면서 불심검문은 없어졌을까?
도 닦으러 물 건너 가려고 하던2003년.
모든 짐을 콘테이너에 넣어 부치고한 삼사일남은 비행기 일정 만을 기다리던 때였다.
갑작스럽게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10도 안팎까지 곤두박질 했다.
친구를 만나려고 신림역에 나가보니 모든 사람들이 두툼한 겉옷을 입고도 재채기, 기침, 콧물까지흘리는 등말이 아니었다.
난, 남겨둔 옷이 없으니 반팔 셔츠에 얇은 여름 면바지만 입고 돌돌돌 떨며 후닥딱 지하도로 내려섰다.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중, 저 아래 계단 끝에 서 있는 경찰관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내가 올라오는 사람을 피하여 한쪽으로 비켜가자 그도 나와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곤 계단 끝에서 우린 조우했다.
"뭡니까?"
"잠시 검문하겠습니다. 협조해주십시요."
"왜요?"
"경제사범 특별단속 중 입니다. 신분증 제시해주십시요."
내, 기가 막혀서...
경제사범이란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내고 도주했다든지 하는 경제적인 범법자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돈이 없어 도망다니니까 계절에 맞는 의복을 갖추지 못한 거 아니냐...? 그 말씀인데, 한 편으론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분도 그렇게 붙들렸으니까......^^
숱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깃 흘깃 나를 바라보며 호기심어린 표정들이었다.
"협조해주십시요!"
말로는 협조해주십시요 하면서 그는 벌써 손짓으로 멀리 있는 동료를 부르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꺼내주고 그가 무전기를 통해서 본부로 나의 신상을 조회하고 있는 동안 그의 동료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서는 것을 나는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저 위 계단에서도 사람들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정말 기분 더럽다.
"죄송합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그 후 비행기를 타는 그 때까지 난 다시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
범죄를 예방하는 거 다 좋고 범죄 수사의 단서를 얻는 것도 다 좋다.
검문이라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피검문자의 수치심을 유발시키고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간의 존엄성을 경시하는 것이다.
범죄행위의 현저한 징후도없는데 개인에게 공권력을 발동하는 것은 남용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받는 입장을 생각해보자는 거다.
아니면...
관상을 보던가.

(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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