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뻥이요!

뻥이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의 집은 서해안 바닷가 아주 작은 포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엔 당시만 해도 고정적인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버스정류소에서 사탕 및 과자류, 담배 등의 소소한일용품 몇가지를 마룻바닥에 박스 채로 놓고 팔았고, 매 15일 마다 한 번씩 이동장터가 생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민수도 그닥 많지 않았을 뿐더러 드나드는 버스도 오전에 3편, 오후에 4편 뿐인 아주 작은 마을로, 하루 종일 길가에 나앉아 있어도 집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50 명도 채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장이 서는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달랐다.
그 전날부터 등짐진 장돌뱅이들이 버스편으로 배편으로 하나 둘씩 몰려오고, 양철지붕을 얹은 장터에는 곳곳에 칸을 나누는 차일들과 흙바닥을 덮는 돛자리들이깔리기 시작한다.
동네 유일한 커피숍인 길다방에도 손님들이들어차고 초저녁 부터는 몇 안되는 바닷가 식당에 외지인들이삼삼오오 모여서 대폿잔을 들이키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장날이 되면, 아침 첫차로 몰려드는 보따리 장수들, 근처에서 우마차에 닭을 싣고 팔러 나오는 사람들, 자전거 뒤에 가득 하늘이 안보일 만큼 소쿠리를 실은 사람, 여럿이서 돈 모아서 트럭을 대절하여 오는 사람들, 아, 그리고 이러저러한 섬에서 통통배들을 동원해서 장보러 나오는 사람들 등등 번잡하기가 길음시장 만큼이나다를 바 없었다.

우리 할아버지집은 장터와 이웃한 관계로, 빙 둘러진 담장이 모두 상인들이 이동상점 뒷벽 역할을 하였는데 간혹 새로 온 상인 때문에 자리싸움도 일어나기도 하였다.
북쪽은 주로 정육을 비롯한 식료품, 남쪽에는 포목점들과 옷, 동쪽에는 사탕 및 과자, 제수용품, 서쪽에는대장장이, 옹기장이, 사주풀이그리고 가장 중요한뻥이요할아버지가 위치했다.

뻥이요할아버지는 아침 한 열 시나 되서나 슬슬 기계를 설치하고 풍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하는 일이빈 미제 쇼트닝 깡통을 줄세워 놓는 일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튀기고 싶어하는 쌀이나옥수수를 순서대로 그 깡통 안에 채워놓고종이로 만든 번호표를 세워놓는다.
자기 순서가 될 때까지 장터에 나가 일 보는 사람도 있지만, 3-4 미터 정도 떨어져 쭈그리고 앉아서뻥이요 할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거개의 경우였다.

쌀을 튀긴 것은 '튀밥 또는 간밥', 옥수수를 튀긴 것은 '강냉이' 라고 했다. '박상' 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데 그 유래는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뻥이요 할아버지는 쌀 또는 옥수수 같은 곡식을 솥에 넣고 뚜껑을 꼬챙이를 이용해 꽉 조여준다. 아, 곡식을 넣기 전에 10% 를 자신의 공임으로 덜어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풀무를 이용하여 풍로불이 준비되면, 주물로 된 똥돼지 모양의 원형 압력솥을 불 위에서 돌리게 되는데, 그 당시로서는 그런 기계 자체가 참 신기해보이기도 하였다.
원리는, 밀폐된 원형솥 안에 곡식을 넣고 불로 달구어주면 내부는 고온 고압의 기체 상태가 되는데, 이 때 뚜껑을 열어주면 압력차로 인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에서 억눌려있던 곡식들이 팽창을 하면서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다.

약간의 사카린과 소금을 가미하면 좀더 맛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물론 이 작업의 백미는 뚜껑을 준비된 자루 속을 향해 열기 전에 할아버지가 외치는 '뻥이요!' 하는 소리와 또 뻥! 하고 터지면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였다.
뻥! 소리 한 번에 온 장터는 구수한 냄새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었다.
뻥! 소리 한 번에 지나가던 아주머니 뒤로 엉덩방아 찧게 만들던 것이었다.
게다가 압력이 좀 센 경우에는 일부 튀겨진 곡식이 자루 밖으로 튀어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그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우리는 '뻥튀기' 라는 새로운 모습의 뻥이요를 만나게 된다.
동그란 원형판 위에 쌀을 찻숟가락으로 하나 정도 부은 뒤 압력레버로 뚜껑을 꾸욱 눌러주면, 찌이익, 뿌직! 하는 시원찮은 소리와 함께 동그랗고 하얀 쌀 뻥튀기를 만들어내는, 이 리어카 위의 기계는 뻥이요 할아버지의 차세대 기계로, 한 때 3천만의 간식으로 군림한 바 있다.
극장에서, 길거리에서, 카페에서나 어디서든지 사박사박 뜯어먹는 소리에 전국이 묻혀버린 정도였고 특히나 다이어트하는 여인네들의 다정한 벗이 되었었다.

세월이 가고 기계가 발달하고 생각이 바뀐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 장날 그 장터에서 풍로 위에서 돌아가던 뻥이요 할아버지의 거무튀튀한 기계로 인한 한바탕의 웃음소리, 뻥이요 할아버지의 고함소리, 뻥!, 그리고 구수한 그 내음...... 그 정감이 우리의 뇌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재치있는 코메디언이 유행시킨 "뻥이요!" 라는 말이 주는 그 느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나간 시절의 노란색 학교 담장에 비추는 석양과도 같은 느낌이다.

10년이 지나고, 또 20년이 지나면, 뻥이요 할아버지는 아무도 기억할 수 없지 않을까?
그 때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어떤 것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게 될 것인가?
그러한 것들이 지금 남아나 있는 것인지...
한 달에 한 번쯤은 그 할아버지의 '뻥이요!' 고함과 함께 터져나오던 뻥! 소리가 듣고 싶은 건, 쓸데없는 사치일까?







(20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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