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뽑기와 달고나

뽑기와 달고나







옛날 대천역의 겨울은 참으로 을씨년스러웠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더더우기 차들은 보기 힘들었는데, 한 번 휘잉하고 겨울바람이 회오리치면서 지나가면 갓 깔은 아스팔트 위로 뿌연 황토가루들이 달음질쳤다.
아이와 그의 누이는 때로 엄마에게서 동전 몇닢 얻으면, 한걸음에 달려가는 곳이 있었다.

대천역 쪽으로 가다가 한내책방 사거리에서 왼쪽으로돌아 극장 방향으로 있는 조그만 천막.
장사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둥그런 새 천막의 휘장을 열고 들어서면 그 안엔 벌써 서너명의 아이들이 쭈그리고 앉아 주인아저씨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맞은편으로는 사과궤짝을 앞에 하고 또 그 옆으로 나란히 연탄난로를 놓고 아저씨가 뭐 줄까 하는 눈초리로 코를 훌쩍이는 아이와 누이를 올려다본다.
"떼기 두 개 주세요."

떼기!
그랬다. 아이와 누이가 원하는 건 바로 떼기 (띠기) 혹은 뽑기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조그만 국자에 설탕을 세 찻숟가락을 담아서 연탄불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살살 저으면서 달구기 시작한다.
국자 안에서 설탕이 시럽처럼 녹아들면 젓가락 끝으로으로 하얀 소다를 한 번 꾹 찍어서 다시 설탕에 툭 떨어뜨리면서 저어주면, 아 이게 누리끼리한 색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러면 아저씨는 젓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두어 번 돌려주고 불에서 국자를 내린다.
아이가 달콤한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깊게 들이마신다.

사과궤짝 위에는 은빛 스텐레스 받침판이 놓여있고, 그 옆으로아이 손바닥만한 스텐레스판의 한 쪽 끝만 살짝 말은 긁게, 역시 손바닥만한 동그란 스텐레스판에 손잡이까지 갖다붙인 누르게, 예쁜 모양을찍어낼 수 있게 만든 여러가지 모양의 스텐레스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산작업이 끝나면궤짝 위의 스텐레스 받침판을 잽싸게 닦아낼 거무튀튀한 기름걸레가 있다.

불에서 내린 설탕국자는 김이 빠지기 전에 스텐레스 받침판에 깨끗하게 떨구어야 했다.
아저씨는 국자를 탁탁 받침판에 쳐서 부풀어오른 떼기덩어리를 받침판에 떨구었는데, 이 순간이 천막 안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좌아 흐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누르게를 이용하여 지긋이 눌러주면 떼기덩어리는 삐직삐직 하며 누르게에 의해 납작하면서도 동그란, 빈대떡 같은모습으로바뀐다.
다음은 동그란 틀로 떼기덩어리를 눌러 매끈한 동그라미로 바꿔주는데, 가장자리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는 당연히 아이와 누이의 것이었고, 원하지 않는 경우는 그 앞에서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뭘로 해줄까?"
"별모양요."
A자, B자,ㅏ자 등 여러가지 틀 중 아이와 누이는 똑같이 별모양을 선택했다.
그러면 아저씨는 빈대떡 같은 떼기 위에 별모양의 틀을 놓고 다시 누르게로 살짝 누르곤, 더 굳기 전에 재빨리 별모양과 가장자리를 연결하는 몇 개의 파인 선을 만들어준다.
그 파인 선들 덕분에 별모양대로 떼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이었다.
긁게를 이용하여 받침판에서 떼어진 떼기는 아이와 누이의 손에 하나씩 옮겨진다.
"모양대로 떼어오면 하나 더 해준다."
스텐레스 받침판을 예의 그 기름걸레로 훔쳐내며 아저씨가 아이에게 말한다.
누이는 벌써 모양을 떼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묻혀 별모양을 따라 바르고 있다.
아이가 코를 한 번 훌쩍였다.

떼기 천막을 나오면서아이와 누이는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로지 별모양으로 잘 떼야한다는 일념으로집중에 집중, 손시러운 줄도 몰랐다.
아이가 다시 한 번 코를 훌쩍이는 순간, 겨울바람이 한 번 휘이 불었다.
아, 이런......
그들의 떼기는 그들의 작은 손바닥을 떠나 바람에 날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아, 안돼..."
아이가 길바닥 위에 다 깨어진 떼기를 집어들어 입으로 넣으려 했다.
누이가 아이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돼, 더러워!"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때, 그들의 뺨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빨갛게 얼어있었다.
...

몇 년 후, 그들이 서울로 왔을 때 그들은 아이들이 또 어떤 천막 앞에 주욱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고 예전에 그들이 먹어본 떼기 장수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아이들이 조그만 국자에 녹이는 것은 설탕 세 숟가락이 아닌 하얀 고체덩어리였다.
떼기 아저씨와는 달리 아이들이 직접 국자를 연탄불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그 하얀 덩어리를 녹이고 있었다.
"너 달고나 먹어봤냐?"
"달고나?"

나중엔 안 것이지만, 달고나라는 것은 설탕이 아닌, 포도당으로 만든 것이었다.
포도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이는 알 수도 없었거니와 그 먹는 방법이 참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녹인 후 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젓가락으로 찍어서 먹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 먹은 후엔 젓가락과 국자를 물에 담갔다가, 다음 아이가 오면 그걸 또 꺼내 땅에다 대고 두어 번 국자에 묻은 물을 뿌리고 바로 연탄불로 가져갔다.
'더러워...'

학교가 끝나고나면 친구들은 옹기종기 학교앞 한씨네 문방구 앞에 쭈그려 앉아 국자에 달고나를 녹여대는 것이 일과였다.
'짜식들, 학급회의 시간에는 불량식품을 먹지 말자고 침 튀면서 떠들던 놈들이......매일 달고나를 입에 달고 사는구나?'
가장 친한 친구 훈이 녀석은 아예 달고나 순서 기다리며 아톰바 (어묵) 하나 먹고, 오브라이트 (설탕으로 만든 필름) 하나 먹고......국자 순서가 되면 달고나 먹고......
'어유~ 그냥 거기서 살아라 살아, 달고나에 목이 맨다 매.'

사실 아이는 잔돈이 있으면 모아서 플라모델을 사기 위해 군것질을 참고 참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 훈이 녀석,
"야, 너 오늘 생일이지? 너 한씨네 문방구에서 먹고 싶은 것 내가 다 사준다."
"먹고 싶은 것 없어. 하여간 고맙다."
"그럼 너 나 달고나 하나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 우리집에 가서 놀자."
그 친구는 한마디 (예의상으로라도) 먹어보겠느냐는 말도 없이 혼자 달고나를 먹었다.
그날따라 그 친구 입으로 들어가는 달고나가 왜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지......
"야, 그...달고나 맛있냐?"
"그럼."
아이는 냅다 친구의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달고나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후, 한동안 아이의 모습은 플라모델집에서 찾을 수 없었다.





(2008.10.2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