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희야 되롱 삿갓 찰화 東澗의 비 디거다
기나긴 낙대에 미늘 업슨 낙시 매야
더 고기 놀라디 마라 내 흥계워 하노라
(조존성)
아이야 도롱이와 삿갓을 준비하거라. 동쪽 골짜기 시내에 비 걷혔다
긴 낚시대에 미늘 없는 낚시를 매었으니
물고기들아 놀라지 마라. 내 흥에 겨워 노는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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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비가 걷히고 아이들과 산보를 한다.
낚싯대 마냥 생긴 외다리 카메라 받침대를 지팡이 삼아 동네를 한바퀴 돈다.
첫째놈은 걷기에 자신이 있다고 앞서나가고, 둘째놈은 걷기 싫은데 떠밀려 나왔다고주둥이 쭉 내민 채로 4-5 미터 뒤에 처져 마지못해 따라온다.
서늘한 아침공기가 나뭇잎에 더해져 그 상큼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봐라, 아침에 걸으니까 좋잖아...
한 시간을 걷는데 서로 한마디 말도 없다.
첫째놈은 덧옷까지 벗어들고 그저 아빠보다 앞서 가려고 끙끙거리며 씨근덕거리며 간다.
이놈아, 나도 예전엔 쾌보(快步)로 날리던 사람이여.
한마디 하고 싶지만, 뻣뻣해진 내 다리가 그를 증명하질 못하니... --;;
첫째놈은 신이 나서 자꾸만 앞서나가고, 재미없는 둘째놈은 자꾸만 뒤로 더 처진다.
그러다보니 우린 행군하는 군인들처럼 세명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느슨한 대형을 유지하며 걸어가고 있다.
이것이 가족이 즐겁게 산보하는 모습??
그래도 안걷는 것 보단 낫다는 생각에 그냥 묵묵히걸어간다.
걷는 동안 8명을 만나고 7명과 인사를 나눈다.
대부분은 아침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지만, 걷는 도중 마주치는 누구든지 서로 '굿모닝' 이라든지 '하이' 하는 것이 무길도에서의 생활습관이다.
인사를 나누지 않은 단 한사람은, 같은한국사람으로 '추정' 되는 인간이다.
저만치 걸어오는 폼과 생김새가영락없이 한국사람의 그것이어서, 다가오면 '굿모닝'이라고 할까 아니면 '안녕하세요' 라고 할까 고민을 하는데...
그 사람, 5 미터 전방에서 갑자기 건너편 길쪽으로 홱 돌아서더니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이런, 인간하구는...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나?...ㅉㅉ
암만 무길도한량이깍두기 스타일이래지만, 이만큼 너그럽게 생긴 깍두기도 잘 없는데... ^^
불쌍한 피해망상증의 한국인에게는 다음에 인사를 나눌 기회를 다시 주기로 한다.
그 사람을 한 열걸음 지나쳐 뒤를 살짝 돌아보니, 그 사람도 슬쩍 뒤를 돌아본다.
그렇지? 저도 뭔가 켕기는 것이 있것지... 이 불쌍한 중생아... ^^
그래도 오늘은 버르장머리 없는 견공들을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간혹 못생긴 개들이 길을 안비켜주거나 unfriendly하게 짖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잘생긴 주인들은 자신의 개의 나쁜 행실을 꾸짖고 사과를 하지만, 개처럼 못생긴 주인들은 개줄만 잡아끌면 그만이다.
개가 주인을 닮는다니까...
그나저나 이놈들이 내가 무시무시한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아는거야, 모르는거야?
아마도 무식해서 한국사람과 된장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예정된 코스를 다 돌았다.
다음엔 낚싯대라도 들고 바다로 나서볼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가만, 그러다 물개라도 걸리면 어쩐대?
고래라도 잡으면...?
아서라, 그냥 남에게 피해 안주는 산보나 제대로 하자꾸나...
(201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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