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8일 월요일

담배 한 개피



담배 한 개피








내가 처음 담배를 입에 대어본 것은 대학교 들어가서도 한참이 지난 2학년 때부터 였다.

주변의 권고에 의해 좀 노숙해 보이고, 좀 여유도 있어 보이고, 좀 멋있어 보이라고 피우기 시작한 것이 제법 오래동안 나의 입술 끝에, 코 끝에, 그리고 두 손가락 사이에 인이 박혀버렸다.
한 20여년이 넘도록한결같이 사랑했다고나 할까? 
강남의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충분히 불쏘시개로 쓴것 같다.
갑부의 아들이었음이 틀림없겠다. ^^

그렇게 오래 피웠어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담배 끼니를 걸렀다고 손이 떨린다거나, 정신이 혼미해진다거나, 심적 안정을 잃어버리는 정도의 현상은 일어나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루에 약 12개피 정도가 평균이었고, 항상 그 정도를 '아, 이것이 나의 적당량' 하며 스스로를 제한하곤 하였다.

물론 술자리가 있는 날은 그 평균 개피수를 여유롭게 훌쩍 뛰어넘기 일쑤였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시즌이 있는 12월처럼 일이 무지무지하게 바쁜 경우엔, 아침 8시에 출근하여 한 대, 그리고 저녁 7시 퇴근하면서 한 대 피울 정도로, 상황에 따른 통제는 가능한 정도였다.
아, 그건 본의 아니게 피치 못하여 못핀 경우이니 통제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니, 그냥 참고로만 이야기 했다고 하자.

동네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골초 중의 골초이셨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에게 담배를 팔아 이윤을 받으실 양으로 집 한켠에 담배가게를 내신 할머니.
어느 한 순간 벼락같이 담배를 영영 끊으시긴 했지만, 열혈청년 시절부터 담배를 지극히도 사랑하셨던 울 아부지.
할아버지가 피신 담배꽁초 필터의 스폰지를 모으고, 반딱거리는 담배갑들을 모아, 이리 접고 저리 접고 뱅글뱅글 돌아가며 이어붙여 담뱃내가 구슬구슬 풍기는 방석을 만들어내던 고모.
그리고 골목 모퉁이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바지 호랑에 두손 집어넣고 오른쪽 다리 까치발 들어 바들바들, 한겨울 문풍지마냥 다리를 떨다가 어른께 들키면 피우던 담배를 끄지도 못하고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넣던 우리 삼촌.
외가쪽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형편이었으니, 그러고보면 내가 담배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내 유전자 속에 다 있었다고 보아도 큰 잘못은 없으리라.

한 때는 정말 담배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한 개피의 담배는 기쁠 때는 환한 즐거움을, 슬플 때는 따뜻한 위안을, 고민이 있을 때는 같이 대화를, 땀 흘려 수고했을 때는 평안을 주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친구의 얼굴이 좋았고, 커피의 향과 어울어지는 담배향이 달콤했다.
마치 험프리 보가트가 금방이라도뚜벅뚜벅 나타나기라도 할것처럼, 카페 무슈 니콜라이의 백열등은 테이블 위로 노랗게 작열하고 투명한 유리재떨이에 막 걸쳐놓은 담배는 푸르스름한 연기로 피어오른다.
커피와 담배가 없이 예술이 가능이나 했었을까?

담배는또 다른 사치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암만 많아도 지나치지 않을 숫자의 형형색색의 라이터들, 빛나는 담배케이스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엔 담배에 관련한 악세사리를 받고 즐거워하지 않는 끽연가들이 과연 있을 것인가?
터보라이터건, 지포라이터건, 아니면 2차 대전 당시의 영국군 군용라이터건, 금장으로매끈하게 마감된 워터맨 라이터건...
그들은 그 한순간 제각기 아름다운 소리를 다해 영롱한 불꽃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파란색 장미꽃의 황홀함처럼, 주인의 손 안에 차가운 사랑으로 안기어 든다.
담배를 피는 것도 멋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한 때 구두 뒷굽에 스윽 그으면 딱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황냄새를 풍기며 불을 피워올리는 딱성냥도 좋아했고, 심지어는 카페마다 레스토랑마다 제각각 예쁘게 디자인한 성냥갑 수집에도 빠져들기도 했다.
High Society,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오감도, 1과 1/2, 누나네, 해바라기, 세실 레스토랑...
로고만 새겨진 평범한 성냥들 보단, 좀더 독특한 디자인의 성냥갑에 애착이 가곤 했다.
성냥개피를 바깥쪽으로 내리 그을 것인가, 아니면 내쪽으로 당기면서 그을 것인가...
너에게 먼저 불을 줄 것인가, 내가 먼저 붙이고 나중에 네게 줄 것인가...
황이 화악 타오르며 내 얼굴을 밝히고 난 후 성냥을 담배로 갖다대는 것이 더 멋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보가트식 트릭이리라.

어느날이었던가...
아내와 나는 과연 내가 니코틴중독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논쟁을 벌였고, 결국 난 역사에 길이 남을 선언을 하고 만다.
"지금부터 한 달 동안 테스트로 담배를 피지 않는다. 만일 내가 한 달 동안 한 개피라도 담배를 피우면 난 니코틴중독이고, 만약 한 달 내내 한 개피도 안피운다면 니코틴중독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내가 담배를 한 개피도 안피우는 날짜가 하루하루 늘어나자, 아내는 점점 아하, 드디어 담배를 끊는 모양이구나 하고 혼자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달을 꼬박 담배없이 지내고 나자, 나는 바로 그 날부터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봤지? 중독 아니야~"

한 3년쯤 되었을까?
나는 한 3년쯤 전에 사랑하던 담배와 결국 이별을 하였다.
사업확장의 문제로, 또 집을 사려는 욕심으로 우리 부부는 당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다.
무엇 하나 의지할 수 없는 사고무친의 타향에서, 움켜진 현금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마치 씨암탉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통장을 건드리지 않은 채, 우리는 불안정한 현금수급만으로 긴축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한 번은 주말에 모처럼아이들을 데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M햄버거집을 갔다.
너무나 맛있게 먹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렇지 않아도 좀 미안했었는데, 돌아오는 차 중에서 한 녀석이 말했다.
"아빠,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래, 아빠도 맛있게 잘 먹었다."
"근데, 맛있어서 자꾸만 먹고 싶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사먹도록 하자."
갑자기 두 녀석은 약속이나 한듯 환호성을 올리고...

그동안 긴축재정 한다고 일주일에 한 번도 햄버거도 사주지 않았던 것이 미안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동안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맬 때, 담배에 돈을 낭비하는, 아무 이유없는 특권을 나 혼자 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한달 담배 피는 돈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두 번 더 사줄 수 있는데...
저렇게 좋아하는 녀석들이 이야기도 못하고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미안하다, 이녀석들아...

그날 이후 나는 담배를 끊었고, 아이들은 즐거운 나들이 횟수가 늘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아끼며 항상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금장 담배케이스와 결혼 후 첫생일에 아내가 선물한 무광 지포라이터를 설합 속에 잘 간직하고 수시로 만져보곤 한다.
이제는 벌써 담배의 냄새가 맵고 때로는 기침도 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마치 그 여름을 떠나버린 '소나기'의 소녀 모습처럼 담배는 내 가슴 저 뒷켠 어딘가에 아련한 모습으로 내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스스로 내 아이들을 위하여 뭔가 조그만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뿌듯한 마음과 아빠라는 이유로 불편부당함을 감내했던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기엔 너무나도 사소한, 나의작은 추억이었을 뿐이다.

그냥 가끔은 그리워도 해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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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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