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8일 월요일

기브 미 쵸코레또



기브 미 쵸꼬레또







그 때는 군사정부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나라는 물론이고 개인들도 찢어져라 가난하다 못해 봄마다 보릿고개를 견디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지경이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러지 말란 법도 없던 때였다.

6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내읍 텅 빈 거리엔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깔린지 얼마되지 않은 까만 아스팔트에 석필로 하얗게 그림 그리는 아이들.
군데군데 이어 묶은 긴 깜장 고무줄을 마주잡고 들어올리면, 그 위로 사까닥질하는 아이들.
한내천에서 주어온 공깃돌을 뿌려놓고 쪼그려 앉아 공기놀이 하는 아이들.
퍼질러 앉아도 엉덩이에 흙이 묻어나지 않는 아스팔트 신작로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주 가끔 대한통운 트럭에 처마꼭대기 만큼이나 높이 올라앉은 운전수가 빠앙- 하고 클랙션을 울리면서 지나가면, 깜짝 놀라 하던 놀이판 다 집어치우고 길가로 일단 비켜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놀던 자리로 돌아올 때면, 머슴아이건 계집아이건 할 것 없이 모두 멀어져가는 운전수 뒤통수에 대고 감자바위 날리기에 바빴다.
앞으로 밀어주고, 뒤로 제껴주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길게 앞으로 쭈욱-
에라이~, 이거나 먹어라이~ ^^
먹기 힘든 시절, 그래도 감자바위는 아낌없이 먹여주던 시절이었다.

어찌어찌 하다가 아이스케키 하나라도 얻는 녀석이 있으면, 그 앞에 모두 나래비를 섰다.
"그거 만나니?"
"한 번만 핥아보자. 응?"
모두들 눈망울을 반짝거리면서 아이스케키 임자의 작은 주둥이 속으로 원통형 얼음과자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을 입들을 쩍 벌리고 지켜보았다.
아이스케키 임자는 재고 싶은 마음에 더 천천히 아이스케키를 위 아래로 왕복시킨다.

다음번엔 둥근 주둥이에 아이스케키를 끼우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주면서 둘러선 아이들의 얼굴들을 손잔등 너머로 넌즈시 넘겨보다가 소년을 향해서 턱짓으로 물어본다.
"너, 먹고 싶지?"
소년은 마음을 들키고 뜨끔 했지만, 양손을 허리 뒤로 감추면서 도래질친다.
"나, 그지 아녀."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백기를 든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기온 탓인지체온 탓인지, 녹아내린 한 방울의 아이스케키 물이 원통의 몸체에서 분리되어 저 아래 땅쪽으로 떨어져나가는 순간엔,
"어휴-"
하는 탄식의 소리가 울려퍼지고 모두의 입에 고여있던 침방울들도 같이자유낙하를 시작한다.

그 때 즈음 저 멀리서 띵띵- 하는 코맹맹이 소리의 클랙션을 울리면서 지프가 달려온다.
지프는 호로를 벗기었고 뒷좌석엔 양코백이 미군들이 서넛이 앉았다가 아이들을 보고 반쯤 일어선 상태로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지프쪽으로 가까이 오자 미군들이 아이들을 향해서 이것 저것을 던져주고, 아이들은 길 위에 떨어진 것들을 재빠르게 줍기 시작한다.
미군들이 껌과 쵸콜렛을 뿌리고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이미 소년의 귀에 들려왔다.
왜, 나한텐 아직 안오는거야?
하지만 소년의 기다리는 마음과 달리 소년의 어머니는 그런 경우에 절대 줍지말 것을 아이들에게 이미 다짐을 준 바가 있었다.

미군들은 껌통을 뜯고 쵸코렛 박스를 뜯어서 낱개로 만든 후, 아이들에게 뿌려대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길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줍느라 정신이 반쯤 나간듯 했다.
"기브 미."
"기브 미 쵸코레또."
소년은슬금슬금 지프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땅에 떨어진 쵸콜렛 하나를 주어올렸다.
순간 어머니가 생각이 나 얼른어머니 수예점쪽을 쳐다보았다.
에이-, 씨-
수예점앞엔 이미 어머니가 누나를 앞세우고 나와 서계셨던 것이었다.
아마 누나가 미군지프가 노는 곳으로 다가오자 쪼르르 달려가 어머니에게 알린 듯 싶었다.

어머니의 미간에 내천(川)이 새겨지도록 눈꼬리 양끝이 올라간 것을 보자 소년은 비척비척 지프로부터 물러나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어머니앞으로 갔다.
"버려라."
소년은 입을 앙다물고 주먹에 쵸코렛을 꽉 움켜진 채 도리질쳤다.
"어서!"
어머니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는 쵸코렛을 떨어뜨리고, 울음을 앙 터뜨리며 어머니의 치맛폭으로 뛰어들었다.
양 어깨가 후들거리도록 소년은 서럽게 울었다.
어머니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두 아이들을 데리고 수예점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수예점엔 미군들이 몰려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한국인 통역이 쫓아 들어왔다.
키는 장대만한 코쟁이들이 서로를 향하여 마구 설레발을 떨었다.
소년은 아직도 어머니 치마를 붙들고 흘러나온 눈물 콧물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미군이 다시 쏼라 쏼라 하자, 그제서야 한국인 통역이 어머니에게 물어본다.
"아주머니 아이들이 껌과 쵸코렛을 안받아서 놀랐답니다.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네요"
"땅바닥에 던져진 것을 주워먹는 것은 거지의 할 짓입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이 말에 놀란 미군들은 가지고 있던 껌과 쵸코렛을꺼내 통째로 어머니에게 드리고자 하였다.
"미군들이 미안하다고 받아달라고 부탁하네요."
"우리가 미군들에게 이런 것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확고한 의지에 다시 한 번 놀란 미군들은 웅성거리다가 결국 카메라를 들이대고 한데 엉켜있는 어머니와 소년과 누나의 사진을 찍어갔다.

소년은 그로부터 한 3년여가 지난 후 진짜 쵸콜렛을 먹을 기회가 주어진다.
월남에 파병되었던 삼촌이 귀국선물로 가져온 미군 전투식량 '씨레이션' 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쵸코렛이 생산된 것이 1968년이니까 국산쵸코렛이 나오려면 약간 더 시간이 필요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쯤 아마도 어딘가 먼나라 이웃나라의 아주 오래된, 누렇게 변색된 앨범 한 페이지에 '자존심으로 껌과 쵸콜렛을 거부한 한국인 가족'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은 꽂혀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아이들이 미군들을 쫓아다니며, 옛날 우리가 미군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기브 미 쵸코레또' 하는 것을 영상을 통해 보았다.
순간 아스라이 저 먼 기억의 편린들이 빛 바랜 사진처럼 다가옴을 느꼈다.

기브 미 쵸코레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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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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