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해가 뜬다

작업대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Minolta X-700 카메라를 들여다 본다.
분해만 해놓고 마음이 잡히지 않아 손 놓은 지 벌써 두어 달이 다 되었다.
끙...
하지만 오늘도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들었던 스크류드라이버를 다시 통 속으로 던져 넣는다.
곧 먼 길을 떠날아내 때문에 싱숭생숭한 것도 있지만, 글쎄... 이것 저것 챙기고 준비하는 아내 옆에서 맘 편하게 카메라나 만지고 있는다는 게, 영~...

머리색과 피부색도 다른데다가 쓰는 말도 다르지만,몇년 전부터가깝게 지내는 W에게서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아내를 위한송별회식이라 생각했는데, 가보니 초대된 사람들이 의외로 여럿이다.
지역병원 의사인 H 가족, 항공회사에 근무하는 수학자 T 가족...
우리와 잘 친하지 않은T의 가족이 있는 것을 보면, 아내를 위한 자리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릴에 숯을 올리고 햄버거를 굽고 있는 W에게 다가가 슬슬 이것저것에 대해 물어본다.

휴가를 이용하여 이스라엘 관광을 다녀온 W.
회사에 돌아오자 자신의 부서가 통째로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감축...
그의 회사는 세계 굴지의 항공회사지만 올 봄 들어 벌써 천 명이 넘는 인원을 감축했다.
그리고 그도 거기에 포함된 것이었다.
....
그는 지글거리는 햄버거 패티를 두어 개 뒤집었다.

그의 나이 곧 60을 도달하는 이 때에...
게다가 5년 전 융자까지 얻어 마련한 이 집은 또 어떻해야 하는가...
......
숯불이 타닥 튀었다.
그는 연기엔 눈이 따가운듯 장갑 낀 손으로 두어 번 눈가를문질렀다.
독일병정 마냥 모든 일에철저한 그였건만, 이 상황은 그도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앞에 놓인 새로운 선택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
물론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는 희망을 갖고 새로운 불씨를 살려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는 순간, 자신은 5일 이내에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다시 우리 가족에게일어난 일을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생각하던 오늘이 끝이 아니고, 내일이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Tomorrow was another day.
오늘 내리는 비가 영영 계속 오는 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일은 해가 뜬다는 것.
......
그의 아내가 점심이 준비되었음을 알린다.
그가 집어내는 햄버거 패티 빈 자리에 내가 쏘세지를 얹는다.
많이 먹고 힘내자고요... ^^
(200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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