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물창고
이층의 한 구석에 위치한 가파른 계단을 기어올라
천장으로 난 작은 문을 들어올리면,
지붕 바로 밑으로 자리한세모난 다락이 있다.
구석마다회색거미줄이 조금씩 늘어져 있고
곳곳에 뿌연 먼지가 앉아 새로운 발자욱을 만들고 있다.
동그란 창문으로 비쳐드는 노오란 햇살도 따스하다.

다락방엔 항상 외부를 동경하는 창이 있기 마련이다.
소녀 하이디가 알프스의 아침을 만끽하며 내려다 보던 침실의 창.
크리스티앙이 폭풍우 속에 검은 바다를 헤쳐나가던 조타실의 작은 창.
어느 시인이 밤새 쿨룩거리며 조그만 난로에 의지해 글을 쓰던방의 창.
또 어느 죄수가 작은 빵조각으로 조금씩 조금씩 새를 유혹하던 창.
......

그곳엔 미지의 상자가 놓여있다.
해리 포터의 투명망토나 날아다니는 빗자루 Firebolt 가 들어있는...
사자왕 리처드의 문장이 새겨진 방패와 번쩍이는 칼, 금빛 찬란한 왕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고대의 비밀이 가득 담긴 묵직한 고서들...
혹부리 영감이몰래 감춰두고 잊어버린 도깨비 방망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굵은 자물쇠를 열고 이제는 경칩도 많이 부실해진 뚜껑을 열면,
거기엔 잊혀져버린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들만이 남아있다.
사진들, 편지들 또는 작은 메모들...
병정들, 작은 자동차모형들, 예쁜 펜들...

하나씩 들어보며 그 시간을 다시 느껴본다.
세월을 가늠해본다.
이것은 어떻게 나에게로 오게 되었던가.
이것은 누구의 손길을 타고 내게 전해졌던가.
이것은 왜 나에게 남아있는가.

그땐......
그 땐......
또, 그 땐......
손 끝에 묻어나는 그 감촉은 전혀 낯설진 않지만, 사뭇 다른 건 사실이다.
잉크가 말라버려 예전의 부드러움을 찾아볼 수 없는 파카 볼펜.
세월에 무디어져 더 이상 편지봉투를 자를 수 없는 종이칼.
누런 회색으로 바래버린 아주 옛날의 흑백사진들.

작은 나의 생각이 비롯되던 모든 clue 들......
생각을 현실로 바꾸어주던 모든 도구들...
그 땐, 내게 기쁨이고 희망이었다.
기억의 편린들...
뚜껑을 닫고 굵은 자물쇠를 걸고는,
먼지 앉아 뿌옇게 되어버린 상자를 가만히 끌어 안아본다.

모처럼 비가 개고 햇빛이 반짝하는 짧은 시간을
이곳에선 sun break 라고 부른다.
이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 짙어오것다.
라고 노래한 시인을 생각하며 봄을 찾아 공원으로 나갔다.
내 마음의 보물창고 담아둘 아름다움을 찾으러......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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