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낙엽을 낸다

간밤에 불던 비바람에 우리 뒷산 단풍들이 홍역을 앓았다.
눈꽃처럼 나부끼는 낙엽들에 스산한 달빛마저도 가렸으리라.
그렇게 내어주고도 나무들은 씩씩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고 있다.
산다는 거이 다 그런 거지...

점점 앙상해지는 가지 사이로 바람을 품듯 이야기한다.
주는 것이 행복한거다.
줄 것이 있으니 행복한거다.
많이 갖는 것을 경계하는 나에게도 줄 것이 남아있는가...

마음에 담아둘 좋은 말씀을 자주 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어록 중 하나,
"줄 것이 없으면 웃음이라도 주라."
아무나에게 헤헤거리라는 말씀은 물론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은데 줄 것이 없다면 밝고 따뜻한 미소라도 보여주자는 것이다.
혹, 누가 알겠는가.
힘든 와중에 있는 그 사람에게 나의 따뜻한 미소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두려운 그의 마음에 평안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지...

그런 거 보면 줄 것은 의외로 많이 있는 셈이다.
나에겐 푸근함을 느끼게 해줄 둥근 미소가 있고,
나의 감정을 정리하여 이야기해 줄 수 있는글이 있고,
내가 본 것을 담아 보여줄 수 있는 티미한 사진들도 있다.
그리고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전해주어야 할 아이들도 있다. ^^

우리집에 걸려있는 여러 서화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 중의 하나는,
아버지가 친히 써주신 '지족상락(知足常樂)' 이란 글귀이다.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 란 뜻으로, 오래 전부터 우리 가족의 모토가 되어버린 것.
만족했다는 것은 충분하게 가득 찼다는 의미이고,
바꿔 말하면,비움을 위한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비워내야 또 가득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나무들은 낙엽들을 내고 있다.
오늘 그들은 스스로 비우고 내일 다시 채울 것을 준비한다.
겨우내내 동장군의 기승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주는 것에 행복해 하며...
비워냄에 행복해 하며...

(2009.11.1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