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꿈꾸는 노래방
꿈꾸는 노래방
"허, 벌써 10시네?"
"자, 그럼 이제 슬슬 집으로 가볼까?"
그는 옆자리에 걸쳐놓았던 웃저고리를 들어올리며 슬슬 일어선다.
"헤에- 어딜 그냥 가려고?"
친구는 랩탑 컴퓨터 가방을 어깨에 걸고 작은 눈을 슬쩍 흘기면서 일어선다.
"막차 끊겨, 이 친구야."
"택시 타고 가면 되지"
지폐 두어장을 꺼내 술값을 치루고 둘은 서둘러 주점을 나와 문 옆으로 난 지하로 가는 계단으로 내려선다.
누군가가 벌써 온동네 떠나갈듯한 목소리로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이라고 외치고 있다.
"실연당한 사람 또 하나 있구만." ^^
"만 원어치만 넣어주세요-"
1970년대 '카라오케' 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 먼저인지, 'Minus 1' 이라는 이름으로 필리핀에서 백반주 테잎을 시작한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본격 우리나라에 상륙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올림픽 전후가 아닐까 싶다.
ASSA 노래방을 필두로 시작하여, 차츰 금영이나 태진미디어가 시장을 장악하고 배경 비디오까지 나오면서 우리는 모두 노래방으로 빠져든 것 같다.
모든 스트레스의 해소점이었고, 모든 조직의 단합점을 이끌어내는 곳이었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가무(歌舞)를 숭상하던 민족이었던 관계로, 우리의 노래방은 저절로 흥할 팔자를 타고났다.
서먹서먹한 사람들과도 노래방 한 번 같이 뛰고나면 관계가 부드러워졌다.
남 앞이라고 쑥스러워 하는 사람도 두어번만 가고 나면 은근히 또 다시 가고 싶어했다.
가족단합대회도 노래방에서 노래와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맞선 보고, 곧바로 노래방으로 가서 같이 노래를 했다나, 어쨌다나... ^^
한창 피크를 이루던 시기는 가격이 30분에 5천원, 한 시간에 만 원 하던 90년대 중반.
노래방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도 생기고,
지나친 감정이입을 한 이별노래가 발단이 되어 부부싸움 하는 사람도 생기고,
노래보단 역시 조명발 받는 중앙에서 흔들어대다가 팔꿈치로 유리창을 깨는 사람도 생기고,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가서 소리 질러야 만사가 순조로운 사람도 생기고...
상업용 건물마다 노래방 하나 없는 곳이 없었다더라... ^^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거,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 자제를 했던지, 아니면 노래방 업소들이 욕심을 덜 냈어야 했다.
노래방 업소에서는 술을 팔 수 없다는 점에 착안, 새로운 niche market 을 발견해낸 사람이 있어서 강력히 정부에 건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은 술을 팔 수 있는 '단란주점' 의 등장.
'어차피 숨어서 술을 팔테니까 차라리 양성화시킨다'는 논리가 우스웠다.
그러다가 '어차피 숨어서 마약을 할테니까 차라리 양성화 시킨다' 까지 가면 지나친 비약일까?
더 이상 노래방에서 맥주맛 나는 정체불명의 음료나 데미소다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지만, 이는 결국 순수한 인간들의 패퇴를 의미했다.
그들은 만 원어치의 시간을 받고 보너스로 10분간의 시간을 더 받았다.
"먹이를 찾아 산 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근 한 달을 기다렸다.
눈을 질끈 감고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하여 부르며 그 노래를 음미했다.
그리고 마침내 킬리만자로의 정상에서의 후련함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마쳤을 때, 숨을 포옥- 내쉬면서 마이크를 친구에게 넘겨준다.
친구는 담배를 비벼 끄고 토하듯 노래를 시작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막 설흔이 넘어선 그들에겐 노래가 그냥 노래가 아니었다.
생각을 담고, 마음을 담고, 감정을 담고, 꿈을 담았다.
마치 음유시인들처럼...
마지막 곡으로 라이너스의 '연'을 듀엣으로, 목이 터져라 부르고 나온 노래방 위의 하늘엔 휘영청 달이 빛나고 있었고, 그들은 이제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이, 노래 3단. 오늘 술 잘 마셨고 노래 잘 불렀어."
"천만에. 그건 내가 해야 할 소리, 노래 5단."
반 쯤 깔깔해진 목을 고르며 취기가 다 가셔버려 조금 썰렁하기까지 했다.
둘은 터벅터벅 택시를 잡기 위해 큰 길쪽을 향했다.
"역시 좋은 노래들이지?"
"우리 옛날에 룸메이트 할 때는 매일 불렀잖아?"
"꿈 많은 시절이었지, 그 때는..."
"왜 이래, 아직 인생 제대로 시작도 안했다고."
친구는 그의 등을 한 번 툭 치고 다가오는 빈 택시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요즈음은 더욱 노래방을 가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술, 도우미, 적절하지 않은 행동들...
마치 예전에 우리들이 노래를 하며 꿈 꾸던 노래방이 이젠 모든 타락의 온상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서 선뜻 그 문손잡이를 잡아 당길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옛날처럼 노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이 있을까?
친구와 또는 가족과 함께 들어가서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는 노래방이 있을까?
우리들이 사랑하던 예전의 그 공간은 잃어버린 것일까?
꿈 꾸는 노래방이 그립다. --;;
(200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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