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깡패 길동이


깡패 길동이




























옛날 우리 살던 집에는 길동이가 살았더랬다.
길동이는 태어난지 정확히 6개월째 되는 날 우리집으로 왔다.
부모님이 모처럼 짬을 내셔서 10일간 러시아 여행을 가신 동안, 이층에서 코골며 지키던 나의 경계망을 보란듯이 뚫고 들어온 밤손님들이 안방을 생선 가시 발라먹듯 깨끗하게 털어간 뒤 그는 오토바이 뒷자석에 철망 달린 상자에 실려 우리집으로 왔다.
TV 드라마에서 한 눈 찌그러진 '형사 콜롬보' 의 말처럼, 범인은 현장을 반드시 다시 찾는다는 범죄심리학에 입각, 추정 침투경로를 막아줄 강력한 친구를 스카우트 해온 것이었다.

6개월도 안된 놈이 얼굴엔 벌써 예닐곱 바늘 꼬맨 자리가 있는 아주 험상궂은 퍼그.
"이 놈은 에미고 뭐고 아무나 물어대는 깡패여, 깡패."
아무나 물어?
아, 경비견으로서는 타고난 놈이군.
"얼굴은 왜 저런데요?"
"도사견 한테 덤벼들다가 물려서 찢어진겨-, 쪼그만 놈이 성질도 드럽구..."
개장수 아저씨는 왕방울만한 두 눈을 굴려가며 쳐다보는 누런 퍼그를 냅다 발로 걷어찼고, 퍼그는 퉁- 하고 약 일 미터 튕겨나가면서 개장수 아저씨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깡다구도 있고, 성질 더러우면 밤손님들에게 위협도 되겠군. 좋아 좋아.
성질이 더럽다?
그러면, 둘리에 나오는 성질 더러운 (도우너의 표현에 의하면) 고길동 아저씨를 따서 길동이라고 이름을 짓기로 하지.
그 날부터 타고난 깡패 길동이는 밤손님 추정침투경로인 뒷곁 경비임무에 투입되었다.

이 친구 길동이, 과연 무서운 놈이었다.
가족들이 다가가 '길동아~' 하고 부르면서 손을 내밀면, 그 특유의 큰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별안간 덤벼들며 '왕왕왕' 세 번 짖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 거리며 적의를 드러내곤 하였다.
처음엔 길동이가 무서워 함부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밥을 줄 때도 밥그릇에 음식을 채운 후 긴 장대로 그의 앞까지 슬슬 밀어서 주었고, 길동이가 세 번 짖으면 장대를 물렸다.
하지만 이에 결단코 맞선 사람도 있었다.
바로 우리 할머니이셨는데, 할머니는 긴 마당비를 때때로 청룡언월도 휘두르셔서 길동이를 위협하셨고, 길동이는 길동이대로 그것을 피하면서 짖어대고 으르렁거리는 팽팽한 긴장이 매일 수차례 반복되곤 하였다.
"이눔이 주인을 몰라보고! 이눔!"
"왕왕왕! 왕왕왕!"

무서운 깡패 길동이의 경비 덕분인지 아니면 강화된 보안대책 때문인지 우리집에 밤손님이 다시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 중 길동이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 이유는 길동이의 독특한 잠버릇에 의한 것이었다.

첫째, 길동이는 엄청나게 코를 골면서 잠을 잤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안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길동이의 집에서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우리 부모님은 때로 잠을 설치시기도 하셨다.
어떤 때는 길동이가 초저녁부터 코를 골기 시작하여 아버지께서 창문을 열고,
"야, 이눔아. 코 좀 그만 골아."
하고 한 말씀 하시면, "꾸우웅" 하고 투덜대고 잠시, 아주 잠시 코골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신나게 코를 골며 자는 것이었다.

둘째, 길동이는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깊게 들었을 뿐더러 자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대부분 초저녁에 저녁 먹고 잠 들면 거의 아침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날 줄 몰랐다.
아침이 되면 아버지께서 "야, 그만 일어나." 하시던지, 아니면 할머니의 청룡언월 마당비 세례를 받으면 눈을 아주 천천히 뜨는데 정신없는 표정이 아주 역력했다.
일어난 후에도, 생각이 많은 이 친구는 엎드려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한참동안 유심히 관찰한 후 엉금엉금 소변을 보러 뒷곁으로 돌아갔다.
이러니 길동이가 충분히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하겠다.

길동이가 가족들과 제법 친해진 것은 더운 여름이 지나면서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 가족들 마냥 유난히도 더위에 약한 길동이는 찬 수돗물 세례를 받으면 시원해 하면서 가만히 서있었고, 그럴 때 비누로 등을 문질러주고 하면 아주 좋아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 길동이의 얼굴 상처는 도사견에 물린 것이 아니라 개장수 아저씨의 학대로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길동이가 왜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보였는지, 왜 만지려 손을 뻗으면 덤벼들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항상 그다지 밝지 않은 두 눈과 그 아팠을 때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길동이는 차츰 우리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모두 그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청룡언월 마당비를 휘두르시던 할머니만 빼고......

우리집에 들어온지 두어 해가 지나고, 내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전에 머무르고 있을 때, 길동이는 병을 얻어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집 마당 한 귀퉁이에 그의 작은 몸은 묻혔고 그때부터 우리 가족 가슴에 살게 되었다.
그가 살던 집을 보며 자꾸만 '길동이 어디갔어?' 하고 묻던 조카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그의 큰 눈망울이 불현듯 생각이 나 이렇게 그를 회고해본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잘 살기를...

(20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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