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Gibson과의 재회



Gibson과의 재회




















요즘 일요일 오후만 되면 집사람의 손에 이끌려 자의반 타의반 가는 곳이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더 가고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곳엔 내가 좋아하던 Gibson 이 있고, 폭발적인 라이브 음악이 있고, 뜨거운 젊음의 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깔끔한 모습의 교회가 하나 있다.
이곳에서는 매주 일요일 11시에 젊은이들의 취향에 부응하기 위하여 복장도 좀더 캐주얼하게 하고, 라이브밴드를 동원한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런데 그 라이브밴드에서 황소만큼이나 큰 체구의 리드보컬이 연주하는 악기.
바로 깁슨 (Gibson) 전자기타이다.
그가 땀 흘리며 미친듯 울려대는 깁슨의 소리를 들으며 내 눈가에 안개처럼 뽀얗게 서려오는 옛 추억들과 꿈들에 빠져드는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큰 의미가 있었다.
마치 옛날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인 것처럼 내 가슴에 격정을 일으켰다.

386세대인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3-4년 전부터 해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 그리고 그로부터 몰아치던 그룹싸운드의 폭풍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블랙테트라, 활주로, 샌드페블즈 그리고 옥슨 등 유명한 그룹싸운드들이 노래하는 '주옥같은' 명곡들은 기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의 선곡들이었고...
그러다 통기타로 그들과 똑같은 음을 낼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이젠 지름신이 등장할 차례.
전자기타를 피크로 쳐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따각 따각' 하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대학 초년생에게는 용돈의 쓰임새가 너무 많으게 항상 탈이다.
특히 여러가지 사회적응훈련비로 들어가는 금액은, 지금 생각해도 참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술 배워야지, 당구 배워야지, 외모 치장도 좀 해야지, 때때로 미팅도 해야지, 그리고 담배와 커피는 피할 수 없지......
라면 한그릇은 200원 인데, 커피 한 잔은 150원.
항상 선택은 커피로 가기 마련이었다. 왜냐하면 라면집은 들어가서 15분이면 나와야 하지만 다방은 거의 무한정으로 앉아있을 수 있으니까...^^

전자기타를 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한동안 참으며 지내야만 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그냥 아무 즐거움 없이 강의실과 침실 만을 왕복하는 지리한 시간이 이어졌지만 돼지저금통에 쌓여가는 기타 자금은 그 고통을 감내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점선으로 존재하던 전자기타가, 마치 천 원 짜리 한 장이 들어갈 때 마다 전자기타의 작은 한 부분이 실선으로 변하면서 점차 구체적인 형상이 만들어져가는 꿈의 구현!
조용히 밤마다 돼지저금통을 끌어안고 이불 속에서 혼자 꿀꿀거리며 미소지었다.

그러던 어느 한 가을날.
평소에 무리지어 다니는 친구들을 잔디밭에 불러모았다.
"웬일이냐? 한동안 안보이더니... 술 한 잔하자고?"
"오랫만에 미팅시켜 줄라 하나?"
담배갑에서 담배 한 대 뽑아드는 옆 친구의 담배를 뺏아들며 비장한 말투로,
"그게 아니라... 나 오늘 전자기타 사러 간다!"
"너, 기타 잘 치지도 못하잖아."
담배 빼앗긴 친구가 궁시렁거리며 반박한다.
"지금부터 시작하는거야. 너, 처음부터 당구 잘 쳤어?"
그 친구를 흘겨보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여하간 난 가는데, 같이 가서 흥정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날 포함한 7명의 무리는 모두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날 종로 낙원상가를 죄다 훓은 후에야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 너 프로 할거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전자기타를 하고 싶은거야."
"그럼 내가 아는 사람이 동대문에서 악기점 도매하는데, 거긴 좀 물건은 떨어지는데 값은 괜찮다더라. 거기 한 번 가볼래?"
그래서 7인의 뚜벅이들은 종로통을 뚜벅뚜벅 걸어서 동대문 운동장까지 갔다.

그리고 거기서 우린 Gibson 을 만나게 되는데......
그 Gibson 은 이름 앞에 조그맣게 New 라고 쓰인, 거의 초창기적 모습의 전자기타였다.
"저 형이 그러는데, 진짜 미제 Gibson 은 아니고 국산이래."
결국 가짜 Gibson 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소리는 잘 난다는데... 가격은 네 돈에 맞춰줄 수 있고..."
어깨에 둘러메자 무게가 쇄골을 뽀갤 것처럼 무겁게 내리눌렀다.
주인이 New Gibson 과 앰프를 잭으로 연결해주며 내겐 피크를 건넸다.
따각, 따각...
그대로 그렇게의 전주... 띵 디딩 디딩 띵디딩딩...
아, 이 소리가 내 손에서 만들어져 나오다니......

같이 와 준 친구들에게 한 턱내는 의미로 짜장면 한 그릇씩 사주마 하고 중국집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모두 돌아가면서 교대로 전자기타 New Gibson 을 어깨에 둘러메고 걸었다.
납작한 바디에 기타집도 고급스러워서 정말 폼은 좋았다.
무거운 무게로 인해 잠시 후면 모두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기 바빴지만......
"야, 이거 너무 무거운거 아니냐?"
한 친구가 소리지르자 또 다른 친구가,
"야야, 너 락그룹들 다들 땀 뻘뻘 흘려가면서 연주하는거 못봤어?"
정말 그런가?^^

그로부터 한동안 나의 트레이드 마크는 전자기타였다.
항상 전자기타를 어깨에 메고 학교도 가고, 미팅도 가고, 당구치러도 가고, 술집도 가고......
그리고 틈날 때마다 두어 시간씩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연습도 하고......
아, 앰프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놀고 있는 천일사 별표전축에 New Gibson 을 꽂아 연주를 하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결국 그 전축은 그 다음해 불용처리되는 신세가 된다.
가끔가다 동생들에게 백코러스도 시키기도 하고...^^
또 한 번은 친구들과 거의 90% 그룹싸운드 결성까지도 가기도 하고......

New Gibson 은 불과 얼마전까지, 근 20년을 내 곁에 머물렀다.
때로는 젊은 시절의 음악에의 꿈을, 때로는 잔잔하게 내 이야기를, 그리고 때로는 알 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소리로 실을 때마다 내 어깨에 무게감을 전해주며 함께 했다.
그리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나보낸게 어제 같은데...

그 밴드의 리드보컬이 연주하는 Gibson 은 진짜 미제 Gibson 이겠지만 생김새와 색깔이 나의 옛날 New Gibson 과 많이 흡사했다.
물론 앞에 New 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튕기어내는 소리는 나의 New Gibson 의 울림이고 이야기이다.
그가 땀을 흘리며 연주하는 그 모습이, 그 소리가 나의 옛꿈을, 옛 추억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주일이 더욱 기다려진다.

(200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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