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2일 화요일

바나나가 썩을 무렵



바나나가 썩을 무렵





















부엌 카운터 위에 매달아 놓았던 바나나 껍데기가 짙은 갈색으로 변하였다.
얼마 전 방문하신 우리 부모님을 위해 샀던 바나나 한 뭉치가 그럭저럭 다 소비되고 마지막 4개가 남아 바나나 걸이에 대롱대롱 버티고 있다.
언젠가 저 꼬투리가 약해지면 바나나는 카운터 위로 투욱- 떨어지겠지...
그걸 보면, 혹자는 "아니, 바나나가 이렇게 되도록 그냥 놔뒀어?" 할 지도 모르고, 또 혹자는 "썩은 모양이다. 어서 갖다 버리잖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아직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듯, 이들 바나나에게도 제2의 황금기가 기다리고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왕소금으로 태어난 죄로, 항상 재활용의 길을 연구하는 무길도 한량은 어떻게 그들을 재탄생시킬 것인지를 알고 있다.
어쩌면 이들 바나나들은 더 멋진 효용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지도......

각설하고,
껍데기가 짙은 갈색으로 변하면 바나나가 썩은 줄 알지만, 사실 그 껍데기 속의 바나나 알맹이는 지금이 가장 당도가 높게 오르고 가장 부드러워져서 향기도 가장 좋은 시기이다.
살짝 껍데기들을 벗겨내면 바나나 알맹이는 반쯤 녹은 듯이 질척거리면서, 때론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절반쯤의 알맹이가 툭 분질러져 떨어질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거뭇거뭇하게 피부색이 죽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오우케이.
조용히 함지에 알맹이들을 넣는다.

이제 "바나나케잌" 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 바나나 4개와 같이 갈 친구들을 언급하도록 하자.
1) 설탕 1.5컵, 계란 3개, 버터 녹여서 200g, 밀가루 3컵,
2) 베이킹파우더 1티스푼, 베이킹소다 1티스푼, 소금 0.5티스푼,
3) 우유 0.5컵, 레몬쥬스 4큰스푼,
4) 코코아분말 2큰스푼, 으깬 호두 3큰스푼 등이다.
이들을 모두 한 함지에 넣고 바나나를 으깨면서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바나나 덩어리가 남아 있더라도 상관은 없으니 너무 잘게 부수지 않도록 하면서 반죽에 모든 물기가 스며들때까지 섞어준다.

실상 난 요리사도 아니고, 빵굼터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재료를 넣는 순서도 따로 없고, 그냥 모든 것을 다 쓸어넣고 한꺼번에 버무리는 것에에 만족한다.
이 때 쯤 되면, 미국영화에서는 꼬맹이들이 뛰어나와 엄마에게 묻는다.
"Can I lick it?"
즉, 반죽을 젓던 주걱을 핥아 먹어도 되냐고 묻는 것인데, '그딴 걸 왜 먹어~?' 하는 엄마도 없지만, 일단 주걱을 받으면 입가와 코 끝에 반죽을 묻혀가며 그들은 맛있게 핥아 먹는다.
생밀가루 반죽을... --;

이 때가 되면 집사람에게 소리칠 때가 됐다.
"인제 구워줘야지!"
그러면 집사람은 하던 일 멈추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와 오븐을 켠다.
Bake. 섭씨 약 170도.
준비하는 빵틀은 8인치 원형 1개와 같은 싸이즈 사각형 1개.
집사람은 빵틀 바닥에 오일 스프레이를 치치지직- 하고 골고루 뿌려준 후 밀가루를 반술 정도씩 바닥에 털어넣고 흔들어준다.
그러면 빵틀 바닥에 오일과 밀가루가 엉겨붙은 층이 도톰하게 생겨나는데, 나중에 케잌을 떼어낼 때 잘 떨어지게 만드는 역할과 빵 밑이 너무 바싹 익지 않게 하는 역할도 있는 것 같다.

반죽을 나눠 담은 빵틀을 오븐 밑엣 칸에 얹고나면, 이제 노래 부르면서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노래야 나오너라, 쿵따다쿵따 엽전 여얼 다아앗냥
자아- 살리고, 살리고, 쿵따다쿵따 사이!, 사이!
사아-고옹-에에 뱃노오오오래 가아무울 거리고
사마아악또오 파도-오 기피 스며어드느은데-
빵 되길 기다리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부르는 노래는 구성진 뽕짝이어야 한다.
그래야 웬지 빵 맛이 더 좋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노래 한 서너곡 부르고, 얼른 달려가보면 바나나케잌은 어느새 가운데 부분이 제법 부풀어 올라있고 색깔도 노리끼리하게 변하여 있다.
이쑤시개로 케잌의 한가운데 제일 두툼하게 올라온 곳을 푸욱 찔러보니, 이쑤시개에 덜 익은 반죽이 묻어나온다. (Not yet!)
속으로 '빵냄새 좋다-' 하며 소파로 돌아와 노래 두어 곡 추가.
그동안 향긋한 빵냄새는 소파까지 풍겨와서 노래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만들고 만다.
다시 쪼르르르- 달려가 이쑤시개를 다시 한 번 케잌 깊숙히 꽂아본다.
깨끗하게 빠져나온 이쑤시개를 한 번 쪼옥 빨고 나면 바나나케잌 완성! ^^

사각형 빵틀에서 나온 케잌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면 허겁지겁 먹어줄 것이고, 원형 빵틀에서 나온 것은 옆집 할머니 드릴 몫이라 집사람이 따로 예쁜 접시에 옮겨 담는다.
옆집 성현이 할머니는 우리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연일 반찬을 만들어주신 은혜.
감사함을 보답할 길은 없지만, 따끈한 바나나케잌에 우리 마음도 같이 담는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소리 지르는 집사람의 목소리를 창문 너머로 들으며 아이들 몫을 접시로 옮긴다.

잠시 후, 커피 한 잔 같이 하자는 성현이 할머니로부터의 전갈이 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둘러앉은 식탁엔 우리가 만든 바나나케잌이 올려져 있고, 성현이 아빠, 성현이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손님 한 분이 앉아계셨다.
점심 드신지가 얼마 안되어서인지, 전혀 안예쁘게 만들어진 케잌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안드시고 계시다가, 집사람이 무길도 한량이 만든 케잌이라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다.
할머니와 할머니 손님분은 바나나케잌을 덤썩 덤썩 큰 조각으로 뜯어드시기 시작하며,
"무조건 먹는거야." ^^

성현이 할머니 명령에 두 사람은 열심히 먹기 시작하는데, 가만히 살피니 할머니와 할머니 손님의 표정에 뭔가 아쉬운 것이 얼핏 스치고 지나간다.
아차! 싶어 내가 먼저,
"소금이 덜 들어가 빵 맛이 좀 그렇죠?"
"그래, 소금이 부족하구만." ^^
과도한 소금섭취량을 줄이기 위해, 사실 처음 소금을 넣을 때 설정치의 약 1/5 만 넣었더니 빵이 좀 싱거운 모양이다. --;;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 바나나케잌으로 생색만 내다가 겸연쩍은 마음에 황급히 물러나왔다.

우째- 이런 일이... --;
첫째, 다음엔 모든 걸 정량대로 넣는다.
둘째, 만들고 난 후엔 반드시 맛을 본다.
속으로는 ㅎㅎ할머니, 싱겁게 드셔야 건강에 좋대요...
하기야 내가 걱정 안해도 그 집은 부부가 의사이니 알아서 잘 챙겨드릴까...
새로운 케잌을 위해 바나나 썩히기 작업부터 다시 시작하여야겠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다시 또 만들어 드릴테니... ^^
원래 빵 만들 땐, 잘 먹어주는 사람이 제일 고맙다카던데...


(200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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