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가마귀 거므나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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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귀 거므나따나 희오라비 희나따나
학의 목 기나따나 올희다리 져르나따나
세샹의 흑백 댱단을 분별하야 무엇하리

                                                     (무명씨)



까마귀가 검든지 말든지, 해오라기가 희든지 말든지
학의 목이 길든지 말든지, 오리 다리가 짧든지 말든지
세상의 검고 희고 길고 짧음을 구분해서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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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문을 텅 닫고 나오자 멀리서 놈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온다.
깍깍. 형 어디갔다와?
나 네 형 아니다. 부르지마.
덩치는 닭 만큼이나 큰 놈이 어정어정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말을 걸어온다.
깍깍. 먹을꺼 또 줄거지?
안줄거야, 임마.
입을 앙 다물며 눈을 흘겨 굳은 결의를 보여주자 놈도 방향을 돌려 뒤뚱뒤뚱 자리를 비킨다.

고얀 놈들...
내가 그 공원에 일주일에 한 번만 갔어도 100번도 넘었을 것이고, 2번씩 갔어도 2백번, 3번씩 갔다면 3백번은 갔을텐데 말이다.
아무리그날 내가 검은 쟈켓에 검은 바지를 입어 전체적으로 검은색으로 보였다고해도 그렇지, 공원의 터줏대감처럼 늘 자리를 지키던 까마귀가 공격을 한다는게 말이 안되는거였다.
다 똑같은 놈들이야, 너넨...

녀석은공원 주차장 가로등 위에 높다랗게 앉아있었다.
이슬비 때문에 내가 트렁크에서 쟈켓을 꺼내입고 카메라를 둘러매고 여느때처럼 산책을 시작하자 녀석은 쏜살같이 가로등에서 
공격하듯 뛰어내려오며 내 귓가까지 날라와 깍깍 하고 크게 짖더니 나무 위로 올라가버렸다.
아마 다른 까만 종족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느꼈던 것일까?
야야,그 정도 분별력도 없이 네가 리더냐? 나, 인간이라구!
그렇지 않아도 히치콕감독의 '새' 라는 영화 때문에 까마귀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데...

복수심에, 항상 베란다 난간에 새 먹이로 조금씩 놓아두던 것들을 며칠 건너뛰었다.
그러자 식사시간만 되면 베란다 맞은편 나뭇가지에선 쉬지 않고 놈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깍깍. 냄새 좋은데 진짜 안줄거야?
안줘, 임마. 뭐 예쁘다고 먹을걸 주냐?
깍깍. 그럼 난 계속 시끄럽게 한다. 깍깍.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깍깍깍깍 까악 깍. ^^

덩치가 닭이나 오리만큼이나 큰 까마귀(Raven)들은, 까치처럼 조그만 우리나라 까마귀(Crow) 보다 훨씬 무섭고 공격적이다.
플로리다에선 길거리에서 차에 치인 동물들을 독수리들이 뜯어먹는 틈 사이로 이녀석들이 끼어들어 조각을 훔쳐내 달아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하이에나 같은 녀석들...
쓰레기통을 온통 뒤집고 비닐백을 물어뜯어 음식물 찌꺼기를 찾아내는 것도 이녀석들이다.
민나 도로보데스.

오늘은 아파트 외벽에 붙어있는 전등 위에 묘한 모습으로 붙어있는 녀석을 본다.
야, 너 뭐 하냐?
어... 오늘 모처럼 햇빛이 좋아 일광욕 해. 깍깍.
뭐? 일광욕? 야, 정신차려. 너 까마귀야. 충분히 까맣다고...
어... 그래도 고등동물은 이렇게 하는거래. 깍깍.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그래, 공원에 있는 네 친구에게내 이야기 했어?
아직... 먹을걸 좀 주면 봐서... 깍깍.
치-, 말아라, 이놈아. 나 이사간다.
깍깍. 가든지 말든지...

어휴, 저놈을 이사가기 전에 한 번 손 좀 봐줘야 하는데.... --;;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놈들아.

(201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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