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밭에 해돋다
꽃샘 추위가 반짝하는 아침을 나선다.
필름 한 통 쟁여넣은, 잘 생긴Nikon F100 을 거니 목 뒤로 전해오는 뿌듯함.
따뜻한 블랙 커피를 가득 담은 머그를 가볍게 든 손엔 장갑도 든든하다.
찬 공기가 코 끝을 알알히 간지럽힐 때 마다 어릴 때 마냥 소매끝으로 한 번 쓰윽 닦아준다.
그리고 안개밭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곳엔 낮은 키의 갈대들과 억센 블랙베리의 가시줄기들이 무성하다.
안개밭 위로 스며들기 시작하는 연보랏빛 아침 햇살.
아무도 없는텅빈 시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10여분쯤 지나자,키 큰 나무들 저 위쪽에서부터 햇빛이 들기 시작한다.
안개는 잘게 부서지기 시작한다.
커피머그를 열고 가득한 안개를 커피와 함께 섞어준다.
음- 바로 이 맛이야. ^^

쌀쌀한 날씨에 안개가 블랙베리 잎에 얼어붙었다.
셧터를 눌러대며 한 걸음 한 걸음 더 안개밭으로 들어가본다.
천하의 욕심장이 블랙베리도 어린 잎들은 예쁘기 그지 없다.
난 아직 자고 있으니까 찍지 마세요. ^^

이 친구들은 조금 연세가 있으시다.
가시의 크기가 손톱만큼이나 큰 억센 줄기에 매달려 있다.
내 곁에는 아무도 못와.
마음대로... 그만큼 넌 더 외로울거야.
그래도 다가오면 찌를거야.
사진만 찍으면 난 갈 것이니 두려워 할 것도 없으련만,
그는 가시를 날카롭게 세워 적개심을 보여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노랗게 들기 시작하자 이끼들도 기지개를 편다.
간밤에 제법 추웠지?
어떤 놈이 내 이불 빼앗아갔어?
어서 일어나 아침 먹을 준비해라.
(엄마 이끼인가 보다. ^^)

이 친구는 냉동실에서 갓 꺼낸 아이차처럼 온 몸을 살얼음으로 덮었다.
살짝 이는 바람에 버스럭거리며 꼿꼿하게 흔들린다.
말 걸지 마세요, 입이 얼어서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러려므나.
따뜻한 커피향을 흘려주며 돌아서는 등 뒤에서 한 번 더 버스럭거린다.

안개밭에 더 이상 안개가 남아있지 않을 무렵이면 커피도 더 이상 남아있질 않다.
밝은 겨울햇살에 온 몸을 쫘악 펴보는 블랙베리 잎을 보며 산책을 마치기로 한다.
야아~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나도 이제 집에 돌아가서 늦잠에 빠진 아이들을 깨워야겠다.
Nikon F100 은 역시 느낌이 참 좋다.
제대로 찍지 못하는 나의 사진실력을 탓하면서, 안개밭에 돌아올 날을 곰곰 생각해본다.
텅 비어버린 커피머그에선 아직도 커피향이 진하다.
안개를 섞어서 일까?
(20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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