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6일 토요일

곳 디고 속닙 나니





곳 디고 속닙 나니 시졀도 변하거다
믈 소개 푸른 버레 나뷔 되야 나다닌다
뉘라서 조화를 자바 千變萬化하는고

                                                     (신 흠)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는구나
물 속에 푸른 벌레 나비 되어 날아다닌다
누가 조화를 부려 이처럼 천변만화하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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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때의 학자 신흠은 선조가 죽으며 영창대군을 부탁했던 일곱 대신 중의 하나였다.
그의 한시 중 유명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
오동은 천년이 되어도 소리가 변하지 않고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바탕이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 온다


아마도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첫 구절을 좋아할 것이고, 기생은 둘째 구절을 좋아할 터...
오동나무집이니, 버드나무집이니 하는 음식점들 중에도 이런 구절을 써붙인 곳들을 본 적이 있다.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비결을 간직한 할머니도 이 구절을 이용할까?

우리 동네에 자그만한 한식당이 하나 생겼다.
처음엔 메뉴 메뉴 마다 그 내용이 알차기 그지 없는데다가 맛도 좋아서, 부엌에서 그렇지 않아도 구부러진 허리를 한 번 들썩이는 법 없이 요리하시는 할머니의 솜씨와 카운터에서 싱글벙글 열심히 일하는 젊은 주인네를 사방팔방 칭찬하고 선전하고 다녔었다.
오징어볶음에 오징어가 제법이고, 두부찌개엔 두부가 제법이고, 우거지갈비국에 우거지와 갈비가 차고 넘쳐, 제대로 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다는게 참으로 즐거웠다.

참으로 순진도 했다...난. --
두세 달이 지나고 모처럼 양코백이 W와 L을 그 집으로 초대하여 간 날은 실망으로 배를 가득 채워온 날이었다.
오징어볶음엔 볶음용 멸치만한 오징어 쪼가리만 몇 개 들어 있었고, 제육볶음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내가 시킨 우거지갈비국은 갈비는 기대하지 않는다 쳐도 우거지도 몇줄기 없는 멀건 된장국에 다름 아니었다.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젊은 주인장의 국그릇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래, 처음이니까 오프닝 프로모션으로 재료도 올바르게 쓰고 솜씨 좋은 주방 할머니도 모셔왔을거야.
하다보니 채산성도 좀 떨어지고 단골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니 좀 덜 열심히 해도 매출은 유지되고...
에라, 이... 
차라리 물가 핑계를 대고 가격을 올리는 것이 나았으리라.

그 집이 손님이 점점 떨어지다 보면 몇개월 안지나서 권리금 얹어 또 어떤 사람에게 넘겨버리고 말겠지...
내 일 아니니 알 바 아니다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지 싶다.
당신에게도 그곳에 터를 닦던 초심(初心) 이 있지 않았을까?
당신도 자라면서 숱하게 동심을 우려먹었던 과자업체나 아이스크림업체에게 똑같이 당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서 당신의 변심을 모를 것 같소이까?

천년의 소리, 천년의 맛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본에 충실한 정직함을 기대하는 이 몸은 언젠가 그 젊은 주인장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정도로 다시 나올 것을 기대해본다.
진짜로 채산이 안맞아서, 정말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서, 질을 떨어뜨렸다면 내 돈 더 낼께.
차카게 살자...

(201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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