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바람들어 좋은 날


바람들어 좋은 날 




























요즈음 늦바람 들듯이 찾아온, 사진으로의 몰입이 내 스스로도 퍽이나 신기하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일을 보다가도, 뜯어볼 만만한 카메라 없나 하고 인터넷을 보다가도, 문득 선반 위에 얹힌 카메라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 유혹이 감당하기 힘들다.
그러길래 고치는 즉시 즉시 내다팔았어야 되는 건데......
그리고 고치면 그만인걸 뭔 필름 테스트를 한다고 시작해가지고......
카메라들을 몇 번씩 흘겨보다가, 후닥닥 필름 한 통 그러쥐고, 제일 손 닿기 쉬운 곳에 위치한  카메라 한 대 꺼내들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바람이여...^^

밖으로 가면, 형형색색으로 뻗어오른 나무들과 꽃들과 거리를 자유롭게 뒹구는 낙엽들과 차가워진 기온에 벌써 납작하게 들리는 발자욱 소리들과 날렵한 승용차들의 가뿐한 배기음과......
아, 담을 것이 너무 많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내 사진에 다 담아야 하는가.
혹자는 사진은 '마이너스의 예술' 이다 라는 말을 한다.
그 많은 대상에서 덜어내고 덜어내고 덜어낸 끝에 마지막 남은 가장 간결한 이미지가 바로 사진에서 추구하는 진수를 담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난 다 담고 싶은 걸... 이 욕심을 어이 하나?
어차피 난 사진예술가가 아니니까 그냥 무작정 다 담아볼까?

삼중고의 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 (Helen Keller) 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 이라는 글에서 '내일이면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사람처럼 보라 (Use your eyes as if tomorrow you would be stricken blind).' 라고 이야기 한다.
나에겐 고맙게도 40 여년 이상 잘 길들여진 두 눈이 있고 (그리 좋진 않지만^^), 그 두 눈으로 받아들인 영상을 간직할 하드드라이브 두뇌가 있다.
그리고 더 고맙게도, 남들이 적당히 쓰다가 처리한 좋은 카메라들이 있어서, 그리 뛰어나지 않은 두뇌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 보관해줄 수도 있다.
내일이면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사람처럼 보고, 찍고, 보관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지 않은가.

벚꽃잎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거리를 걸으며, 폭풍우와 포효하는 바다를 느끼며, 온 산을 핓빛으로 물들이는 가을산자락을 돌아서며, 그리고 끝없이 하얗게 덮힌 닥터 지바고의 설원을 가르며 사진을 찍고 싶다.
모처럼 헐헐 웃으시던 할아버지의 밝은 웃음도, 심각하게 단어찾기 게임에 몰두하시는 어머니의 표정도, 까불까불 지껄이는 개구장이 조카들의 작은 입들도 이 사진에는 담아둘 수 있거니와, 우리가 50 여년 전 부모님들의 빛 바랜 결혼식 사진을 보고 생각에 잠기듯이, 사람을 추억케 하고 꿈을 꾸게 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

요즈음은 가장 만만하게 찾는 곳이 뒷산과 멀찍이 자리한 공원이다.
가만가만 한적한 숲 속 길을 걷다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물론 나의 일상사를 돌아보고 계획을 하고 결심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나무를 생각하고 길을 생각하고 자연의 섭리를 느끼면서 자연 속으로의 몰입을 생각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가, 아니면 사진으로 인한 변화인가.
멋진 것, 위대한 것, 장려한 것...... 그런 것들이 아니고 이름 모를 작은 풀잎 하나, 다 시들어져 가는 꽃잎 하나, 말 없이 서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한 그루의 나무......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고맙게 느껴지는 때가 된 것은 말이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40 이 넘으셔서, 사업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실 때, 뭐라도 해서 가족들 밥을 굶기지는 말아야겠다는 인생보험으로 붓글씨를 시작하셨다.
그 이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이 허락할 때 마다 (아, 사실은 시간을 만드셨다^^) 정진에 정진을 거듭, 20 여년 후 빛나는 국전초대작가 나아가 국전운영위원장까지 지내셨다.
그동안 패대기쳐지거나 부러뜨려 내팽개쳐진 붓을 하나도 난 본 적이 없다.
물론 절대절명의 상황에서의 인생보험이라는 사명감도 막중했겠지만, 당신 스스로의 가슴에 스민 먹향으로 인한 즐거움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심심할 때 마다 뜯어보던 카메라, 그리고 고친 카메라를 테스트하느라 찍기 시작한 사진.
그 사진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은 '인생은 오십부터' 라고 외치는 무길도 한량의 가슴을 사정없이 꿰뚫고 지나간다.
인생보험이 아니면 어떠랴.
모든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잖는가.
그냥 바람불어 좋은 날에 노란 마후라 한 번 흩날려 보는 거지, 뭐.^^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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