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백주의 결투

백주(白晝)의 결투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간혹 지나치게 모든 것에 전투적이며 자신을 제외한 모든 대상을 투쟁의 대상으로, 극복의 대상으로삼으려고만 하는사람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이런 행태들은 주로 어렸을 적에 자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알려져 있다.

즉, 집안에 형제가 너무 많아서 된장찌게에 있는 두부 한 조각을 놓고 젓가락을 맞부딪혀야 하는 경쟁적인 생존환경이 사람을 전투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허구한 날 싸워대는 아빠 엄마로 인해 야기되는 정서불안의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질 수도 있다.
또 요즘 유행하는 단어,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이)로 인해 경쟁적인 성격이 될 수도 있다.

하루는 지기 싫어하는두 아이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아이 1 : 우리집이 더 부자다.
아이 2 : 아니야! 우리집이 더 부자야!
아이 1 : 우리 아빠가 더 힘 세다.
아이 2 : 아니야! 우리 아빠가 더 힘 세!
아이 1 :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
아이 2 : (한참 우물쭈물 망설이다가)...음, 그건 네 말이 맞는거 같다.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말하셨거든... --;;;
웃자고 한 우스개지만... 평화적으로 타협(?)하며 전쟁없이 입씨름은 끝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여기에서 조금씩 조금씩 확전의 길을 걷다가 급기야는 원펀치를 날리고 한 쪽에서 콧방망이를 감싸쥐고 눈물을 뿌려야 끝이 나곤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니면 그저 한 편에서 코 끝에서 빨간 피 두어 방울 떨어뜨리면 끝이 나든지...
하기사 코피 닦으면서 울며 불며 달려드는 사람도 있더만...^^

여기 등장하는 소년은 본시 점잖은 가정에서 태어나 안온한 마음 속에 자라나 싸움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환경에서 컸다.
본래 태생이 순했고, 입씨름 보다는 양보하기를 배우고, 폭력 보다는 대화를 배웠다.
더더군다나 친구의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천하의 못난이가 할 짓으로 알았다.
아마도 위인전을 너무 많이 읽었던 모양이다.^^

이 소년이 마주하고 선 상대는 소년보다 두어 뼘은 더 키가 큰 2학년이다.
아직도 그닥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른 봄바람이 스웨터 위로 노출된 목을 서늘하게 했다.
"빨리 덤벼, 씨X아."
"알았어, 이 나쁜 놈아."
상대의 욕설에 정신이 버쩍 든 소년은 주먹을 더 세게 감아쥔다.
이것을 어떻게 공격을 시작한다...?

애초에 둘은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이였다.
멀쩡히 비석치기를 하며 놀던 두 아이는 비석치기에 쓰던 돌멩이를 어디서 주워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화제가 너네 집 이런 거 있어? 하는 식의 대화로 옮겨갔다.
...너네책가방 있어?
...너네 썰매 있어?
거기까진 좋았다.

너네 집 있어?
......
소년의 집은 지방에서 망한 뒤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온 후사글세방에 살고 있는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집이 있을리가 없다.
"... 그런 거 없다, 어쩔래?"
약이 오른 소년은 얼굴이 벌개지면서 따져 물었다.
"집이 없으면, 거지네?"
"뭐, 거지?"
"그럼 거지지 뭐야...거지, 거지."
소년은 벌떡 일어나 상대의 멱살을 쥐었다.
"놓고 덤벼. 네가 어리니까 너부터 덤벼."
상대는 이미 동네의 몇몇 아이들과 싸움질 자주 하기로 알려져 있는 터, 소년에게 먼저 기회를 준다.

언덕길에 서 있던 소년은 상대와 간격을 유지하며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서 언덕 위쪽을 차지하게 되자, 상대와 자신의 키가 같아졌음을 느낀다.
입을 꽉 다물어 어금니에 힘을 주고,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를 노려본다.
소년이 다시 주먹을 말아쥐자 상대도 배꼽까지 처졌던 주먹을 다시 가슴께로 올려 쥔다.
소년은 일단 흘러내리는 코를 주먹으로 쑤욱 닦고 다시 폼을 잡아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따뜻하게 내려쪼이는 햇살에 이마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오늘따라 콧물은 이다지도 많이 나오는건지......
점점 싸울 폼을 잡고 서 있는 것 조차도 피곤해졌다.
자신이 왜 상대와 싸워야 하는지의 의미도 희미해졌다.
상대도 이진행없는 전쟁에 지쳐가는 듯 표정 없이 주먹 쥔 채 시선은 옆벽을 보고 있다.
순간.

소년의 눈에 언덕 밑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외사촌형의 모습이 감지됐다.
지금이다.
형이 보면 편을 들어주던지, 최소한 말려주겠지?
바로 지금이다.
그는 외사촌형이 자신이 전쟁 중에 있음을 알아채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소년과 외사촌형의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소년의 몸은 공중을 날았다.
"이 짜아식이-"

소년과 상대는 언덕에서 두어 바퀴 굴러 내리다가 멈춰 선 지점에서 서로 상대를 향하여 두어 번 힘찬 헛주먹질을 했고,
당연히 그 다음은 외사촌형이 날랜 걸음으로 달려와 둘을 뜯어놓았겠지?
외사촌형은 다짜고짜 두 아이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둘에게 악수로 화해할 것을 종용했다.
똑같이 뒷통수를 거머쥔 두 아이는 차가운 손들을 내밀어 악수룰 하고...

누군가를 향하여 난생 처음 휘두른 그의 주먹은 백주의 허공에 뜨고 말았다.

때리지도 못할거면 주먹을 쥐지도 말았을 걸 그랬다고, 그는 지금도 생각을 한다.
사실 그 친구의 말이 틀린 것도 없었다.
한 번 더참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다 자존심이 상한 것 때문이겠지만.....

하지만, 그러면서 자라고 그러면서 평화로운 공존을 배우는 것이겠지......





(200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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