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머리 깎는 날



머리 깎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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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 달에 한번 수천 마일을 날아와 내 머리를 깎는다.
언제 한번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 없지만, 과감하게도 내 뒷통수에 기계를 댄다.
0번이야? 1번이야?
귀 높이 정도까지는 0번으로 밀다가 그 위는 1번으로 밀지, 뭐.
번호는 전기바리깡에 달린, 머리길이를 조절하는 번호들이다.
그녀는 능숙하게 따다다닥 조정간을 돌려서 맞추곤 바로 작업으로 들어간다.

우우우우웅...
기계가 뜨뜻한 열을 내며 내 뒷통수 한켠을지나가면, 욕조에 엎드린 내 앞으로 머리털들이 마구 쏟아진다.
지난 세월의 교만과 욕망과 허세가 덥수룩히 오른 번뇌초들을 떨어내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야.
한달에 한번씩 나의 새출발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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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대학시절 장발의 시절을 끝내면서...
서역에서의 긴 방황을 마치고 귀향하면서...
그리고 늦은 나이로 군에 입대하면서...
쑥덕 잘린 긴 머리칼 덩이가 목에 동여맨 하얀 나일론 보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올 때면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코가 맥맥해오곤 했다.
나 이제 다신 돌아갈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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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엔 내가 못오니까 이번에 많이 짧게 해줄께.
나 인제 머리 좀 기를까봐...
왜 또...?
응... 그냥 오랫만에 한번 길러보고 싶어서...
그녀는 나를 3초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다시 뒷통수에 꾸욱 기계를 갖다 댄다.
아냐, 아냐. 짧아야 인물있어 보여.
깍두기 같지 않고?
정장을 즐겨입던 땐 듬직한 체구에깍두기 머리스타일로 인하여 오해받던 적도 제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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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부목사님이 무길도한량을 자꾸 교회모임으로 이끌려고한 적이 있었다.
교회활동에 엮이길 싫어하던 무길도한량은 결국 어머님께 불평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마니, 나, 자꾸 이래저래 모임에 나오라 하면 교회 안갈거예요.
안간다 하면 안가는 무길도한량의 성격을 잘 아시는 우리 어머님, 그 부목사님을 만난다.
그리곤,
걔 성질 더러우니까, 걔 자꾸 건드리지 마세요. ^^;;
그 이후 그 부목사님은 무길도한량과 눈길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머님 말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폭스타일 때문이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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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뒷머리와 옆머리를 기계로 밀고 나면, 앞머리와 뚜껑은 나의 몫이다.
머리 깎기 전, 게으름 피우던 딸내미들로 인하여 잠시 흥분했던 아내의 바리깡은 너무 높은 곳까지 1단의 높이로 치고 올라갔다.
이러면 곤란한데... --;;
미안, 미안. 내가 애들 땜에 흥분해서 잘 스톱이 안된 모양이야.
쯧.
기분 나쁘다는 표시로 혀를 한 번 차고 가위질을 시작하자, 아내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가위가 머리를 잘라낼수록 눈꼬리가 따라 올라간다.

이게 뭐야, 완전 야마모토상이잖아... 쯧. --;;
이뻐, 이뻐. 잘 깎았는데, 뭘?
아내는 황급히 얼버무리며 아이들의 외출준비에 바쁜 모습을 보인다.
하긴, 좀 짧아서 그렇지 잘못 자른데는 없어 보인다.
그래... 초창기에 비하면 양반이지.
쥐 파먹은 듯한 머리를 가리기 위하여 모자를 쓰던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가져본다.
오! 옛날이여... (끔찍하기도 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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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건 싫건 그녀는 한두달이 지나면 또 비행기를 타고 와 내 머리를 자를 것이다.
싫건 좋건 무길도한량은 또 욕조 너머로 고개를 늘어뜨리고 바리깡기계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그녀는 또 큰소리 칠 것이다.
내가 아무나 깎아주는 것 아니야....
누가 뭐라 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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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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