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영화고픈 날


영화고픈 날








영화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는 그 형들은 대단했다.
커다란 귀얄로 물풀을 두어번 위아래로 휘두르고 떡 하니 영화포스터를 붙인 후, 다시 양옆을 위아래 두어번 귀얄로 문질러대는데 걸리는 시간, 단 10초.
현수네 반찬가게 덧문에 한 장 붙이고, 모퉁이 돌며 담벼락에 하나 붙이고... 담배에 치익- 성냥으로 불 붙이곤 삐기덕 거리는 자전거를 좌우로 흔들며 페달을 밟아 떠나간다.

"형아-, 잠깐만...!"
소년은 부리나케 그 자전거를 쫓아갔다.
평상시 같으면 풀칠하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영화포스터를 들고 있어주면, 강남극장 초대권이라도 한 장 얻었건만 오늘은 소년이 조금 늦었다.
다 찌그러진 자전거를 세우고 돌아다보던 그 형은 그래도 소년이 뛰어가자 여느 때처럼 셔츠 주머니에서 쑥색 초대권을 한 장 꺼내준다.
'명동잔혹사'
캬~ 이건... 박노식과 최무룡의 주먹싸움에 윤정희가 나오는 A급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누가 더 주먹이 센지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번엔 정면대결이다.
소년은 이미 저만치 멀어진 그 형의 자전거의 꽁무니에 대고 구십도로 굽혀서 두어번 인사를 하면서도 벌써 마음이 두근 반 세근 반 뛰고 있다.

장승백이 뒷길에 자리한 강남극장은 개봉관도 아니고, 재개봉관도 아니고, 이른바 3류 극장이라고 불리우는 재재개봉관으로서 2본 동시상영을 하던 곳이었다.
얇고 딱딱한 나무등받이를 붙은 의자는 빨간 비닐을 씌워져 있었지만 곳곳이 찢어지거나 스프링이 튀어올라와 있어서 잘못 자리를 잡으면 바지를 찢어먹을 수도 있었다.
가열에서부터 마열까지 주욱 가다보면 곳곳에 부서진 의자들이 있어서, '꼬마신랑' 처럼 암만 사람이 많이 드는 날에도이빨 빠진듯 빈 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좌석의 바로 뒤가 키 작은 소년에게는 최고의 자리였다.
아, 물론 맨 뒤에 높다랗게 앉을 수 있는 임검석이 있었지만 그곳은 조금 위험도가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날에는 임검석도 꽉 차기 일쑤기 때문이었다.
괜히 경찰관에게 들켜서 뒷통수라도 한 대 안맞으려면 눈치가 있어야 했다.
더더군다나 미성년자 입장불가 영화인 경우에는영화를 보는 내내 뒷통수가 간질거리곤 했다.
이런저런 신경 안쓰이고 가장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날은 아무래도 일요일 아침 가장 빠른 조조상영일 때가 많았다.

커다란 스크린 옆에 크게 쓰인 '탈모' 라는 글씨만 보일 만큼 조명이 어두어지면 주위의 여러 사업체들 광고를 시작되는데, 이 때까진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장승백이 삼거리 어귀의 '금메달의 집 코코양복점' 도 나오고,결혼예식, 환갑잔치 등의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허바허바사장' 도 나오고, 다이어반지를 끼면서 아줌마가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혼수전문 귀금속집 금보당' 도 나온다.
광고출연진은 쑥스러운 표정의 실제 동네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고, 유난히 에코(echo) 효과를 많이 넣은 성우가 '허.바.허.바.사.장.' 하고 끊어 읽으면 스크린에서는 화살표들이 지도 위를 줄지어 행진하며 사업체를 찾아가는 식이대체적인 모습이었다.

따르르릉- 하고 종이 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감상하고 곧이어 대한뉴우스를 통해 한 달쯤 지난, 건전한 뉴스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때까지도 화장실 준비를 못했다든지 또는 소년의 구미에 맞는 좋은 좌석을 확보하지 못했어도 아직도 너무 늦은 정도는 아니었다.
본 영화가 시작하기 전 '문화영화' 를 돌려주는 시간이 있었기때문인데, 이건 정부에서 만든 홍보영화였지만 뭐 어떠랴~ (그래도 영화인데... ^^ )

자, 이제 영화를...?
아직도 한 가지과정이더 남아있었다.
그것은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바로 예고편 상영이었다.
짧은 시간내에 주요 장면들만 보여주는 예고편들은 소년의 숨가쁘고 만들었고, 소년의 가슴 속에 다음에 보고싶은 영화로 뚜렷이 각인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예고편 하나, 예고편 또 하나... 운 좋은 날에 예고편만 서너개 보여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두 편의 예고편이 맛뵈기로 보여졌다.

그리고마침내, 또 한 번 따르르르릉 하고 종이 울리면 드디어 영화는 시작된다.
시작과 동시에 화면에선 비가 오기 시작하고, 상영시간을 맞추느라 중가운데를 덤풍덤풍 잘라내서 스토리가 영 연결이 안되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는 잘 돌아가던 영사기가 필름을 끊어먹기도 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에이~ 하고 탄성을 지르거나 곧바로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익- 휙- 휘파람을 불어 영사실쪽으로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곧 필름이 복구되고 다시 영사기가 돌아가면 모두는 또 다시 그 빗속으로 빠져들었다.

포장마차를 방패 삼아 인디언들과 힘들게 총싸움을 하다가도 멀리서 나팔소리와 함께 기병대가진격해올 때나, 우리의 주인공이 형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터져나오는 말발굽소리와 외침, "멈춰라, 어명이다!" 혹은 '암행어사 출두야!"
소년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손바닥이 부숴져라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든지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의 최루성 영화를 볼 때면 온 극장 안이 사방에서 쿨적대는 소리에 더 마음이 무너지게 되는 경우도 많아, 괜히 끝나고 출구를 나설 땐 하품을 두어번 연달아 하여 눈에 고인 눈물을 숨기기도 하였다.

영화 한 편이 끝났다고 그 영화에 묻혔던 마음을 계속 지닐 수는 없었다.
2본 동시상영을 하는 강남극장의 두번째 영화가 첫번째 영화가 끝나자마자 휴식시간도 없이 바로 연이어 시작하기 때문에 마음을 빨리 추스리는 자세를 갖추어야 했다.
코미디를 먼저 보고 나중에 울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최루성 영화를 먼저 보고 다음번에 배가 끊어져라 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몇 년 후 중학생이 되었을 때, 소년은 성남의 동시상영 극장들을 종종 찾곤 했다.
교외단속도 없었고 영화도 빨리 개봉하는데다가가격도 서울 개봉관의 삼분의 일 수준 밖에 불과했는데, 더더욱 좋은 점은 지정좌석제가 아니라서 버틸 수만 있으면 하루종일 영화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한 번은 조조영화부터 보기 위하여 아침식사를 거르고 아침 일찍 성남으로 갔다.
조조영화 '라스트 콘서트'를 본 후,점심식사를 건너뛰고 영화를 계속 보았는데 때마침 그날은 프로를 중간에 교체하는 날이었다.
연달아 다른 영화를 3편째 보고, 마지막에 만난 영화가 테렌스 힐과 버드 스펜서가 나오는 '튜니티라 불러다오' 라는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영화였다.
소년은 사상 최초로 소위 말하는 '배가 끊어지도록' 혹은 '배가 아프도록' 웃는 경험을 한다.
영화 자체도 너무 웃겼지만 아침과 점심을 굶었다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후,소년은 '영화는 반드시 식사 후에!' 라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강남극장은 결국 세월의 뒷골목으로 사라지게 만다.
박노식의 한 쪽 눈을 치켜 뜬 얼굴과 새파란 청년의 모습을 한 검은 가죽잠바 최무룡의 모습을 담고 있던 커다란 영화간판도 이제 더 이상은 볼 수 없다.
한 때는 그 일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대로변에서 한 발자욱 뒤로 물러앉은 쇠락한 모습으로 결혼식장과 부페식당이 들어서있다.
영화포스터를 열심히 붙이던 그 형이 평상시에 일하던 극장 뒷켠 간판 그리는 곳은 부페식당에서 쓰이는 음료수와 맥주상자들만 가득히 쌓여있을 뿐이다.

영화고픈 소년의 가슴 속에 꿈을 채워주던 Cinema Paradiso 는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소년도 그 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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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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