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먹은 후에
바회 끗 물가의 슬카장 노니노라
그남아 녀나믄 일이야 부를 줄이 이시랴
(윤선도)
보리밥에 풋나물을 알맞게시리 먹은 후에
바위끝 물가에서 실컷 노닐으니
그밖의 다른 일들이야 부러울 것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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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가끔 색다른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 꽁보리밥을 식당에서 시켜먹는 시절이다.
하지만 옛날 우리 어렸을 때, 농장에서는 매일 매일의 주식이 꽁보리밥이었다.
가끔 가다 쌀알이라도 하나 하얗게 보리들 틈새에 끼어있으면 그날은 운수대통이었건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는 경우가 없었다.
왜냐하면 솥에는 애시당초 보리만 넣었기 삶았기 때문이었다. ^^
꽁보리밥을 사기 밥그릇에 고봉으로 담으면, 제일 꼭대기에 얹힌 보리알은 굴러떨어질까 말까 항상 망설이는 모습으로 얹혀있곤 했다.
쌀밥처럼 찰지질 않아 서로서로 엉겨붙는 성질이 없어서 보리들은 쉬이 서로 떨어졌다.
그래서 고봉에서 첫숟갈 뜨기가 제일 힘들었는데, 어렸던 나에게 그나마 쉬운 방법은 숟가락을꼭대기 근처에 대고 손으로 보리들을 긁어 숟가락 위로 담는 방식이었다.
항상 그렇게 첫숟갈이 어렵사리 입에 들어가면, 들어간 이후에야 아하 보리밥에 된장 얹는걸 잊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했다.
꽁보리밥을 된장에 썩썩 비빈 후에 호박잎에 싸먹기도 하고, 아니면 오이나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때론 '끄뎅이 짠지'라고 부르던 김치종류와 함께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농장의 모든 식구들은 별스럽지 않았던 반찬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그 어마어마한 양의 꽁보리밥을 한그릇, 두그릇 마구 비워댔다.
심지어는 무길도한량도 유치원도 못갈 나이임에도 자신의 머리통만한 밥그릇으로 먹었다.
물론 식사 후 트림이 안나오면 배가 불러서 문지방을 내려가지 못하던 사람도 있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건 어린 무길도한량을 재밌게 해주려던 심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식사 후엔 구수한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면서 고무신을 직-직- 끌면서 마당의 평상으로 건너가 숨을 씩씩 몰아쉬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지난번 약 친 사과나무가 워쩌고 저쩌고...
거시기 아, 왜 무식이네가 있잖남...
시방 그기 무신 말쌈이랴...
언제나 초저녁별들이 서산 위에보이는 그 시간까지 이야기는 모깃불 속에 계속되곤 했고 무길도한량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살핏 잠이 들기도 하던 기억이 있다.
꽁보리밥을 먹고 방귀는 안끼었느냐고?
ㅋㅋ 마당의 평상에 나가 앉는 이유가 뭐겠습니까요. ^^
누우런 하늘이 안된게 다행이겠지요?
(201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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