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6일 토요일

간나희 가는 길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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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드시
사나희 가는 길흘 계집이 츼도드시
제 남진 제 계집 아니어든 일흠 뭇디 마오려

                                                              (정 철)



여자가 길을 갈 때 남자가 그 길을 돌아가듯이
남자가 길을 갈 때 여자가 그 길을 비켜가듯이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니거든 이름조차 묻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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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렇다고 해서 아주 옛날은 아니고, 대략 한 40여년 전 쯤...?
갈매기 끼룩끼룩 울고 담칫배들 통통거리며 드나들던 고향 포구엔, 하늘색 바람벽에 바다 쪽으로 창문을내고 그 주위로 갈매기 몇 마리 그려놓은, 50년대식 다방이 있었다.
이름이야 '여왕봉다방'이든, 향토색 물씬나는 '충남다방' 혹은 '오천다방' 이 되었든 아무 상관이야 없겠지만, 갈색 여닫이문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만들어놓은 노란색 브라스 손잡이엔 때 낄 틈 없이 항상 반지르르 하고 광채가 흘렀다.

문을 반쯤 밀면서 손님이 들어갈라 치면, 어금없이 굵은 색스폰반주가 짙게 깔리는 조미미의 '먼데서 오신 손님' 이 흘러나오고...
www.youtube.com/watch?v=sLPZC7HfvTc&feature=youtube_gdata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마담의 코맹맹이 소리.
어머~ 어서 오세요오~. 얘, 김양아 박사장님 오셨다아~. ^^

싸구려 레자로 만든 소파는 여기저기 스프링이 죽어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하얀 천에 두 마리의 학을 수 놓은 커버들를 씌운 두툼한 방석들이 그나마 시골 다방의 위신을 세워준다.
화사한 미색 한복을 입고 카운터에 앉은 마담은 머리를 뒤통수 위로 구름처럼 말아올리고 양쪽 귓가엔 두어번 동그랗게 만 애교머리를 늘어뜨린 40대 중반의 풍족한 아줌마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엽차를 쟁반 위에 얹어 짐짓 바쁜 척 잰걸음으로 달려나오는 레지는 20대 중후반의 아가씨다.

둘러보면 여기저기 앉아 다방아가씨들과 말장난하며 노닥거리는 이들은 주로 중년층 이상의 남정네들이고, 그나마 한둘 있는 젊은이들은 저희들끼리의 인생사가 바쁘다.
다방 매출을 올리기 위해 쌍화차 한 잔 사달라고 졸라대는 레지들도 있고...
음흉한 눈초리로 아가씨 마음을 낚기 위해 열심히 구슬리는 남자도 있고...

요즘도 이런 다방이 있는지 모르겠다. ^^
다방이란 곳이 원래 만남의 장소 아니었던가.
우리 학생일 때만 해도, 벌써 다방은 구시대의 유물로써 소위 늙은이들의 놀이터로 간주되고,젊은이들은 까페나 레스토랑에 주로 가곤 했다.

하지만 다방이 없던 옛날에도 뭇남녀들 사이의 수작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러길래 송강선생께선, 제 남편 제 아내 아니면 이름조차 묻지 말라고 권고하는거 아닐까?
읍내 장터에서, 단오제에서, 초파일 연등행사에서...
꼭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하는겨! 라고...

뒤집어 들여다 본 우리 조상님네들의 모습이다.


(20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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