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버이 날 나흐셔 어딜과뎌 길너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딜소냐
아마도 至極한 恩德을 못내 갑하 하노라
(낭원군)
어버이께서 날 낳으시고 어진 사람 만들고자 기르시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어떻게 어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두 분의 이 지극한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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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82년 봄.
불타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우리 학과의 망나니들은 여러 단과대학의 과들을 상대로 하루가 멀다하고 1000원빵 축구시합을 벌였다.
천원빵이란, 출전선수 전원이 천원씩 내고 이긴 팀이 다 가져가는 내기였다.
우리가 이것을 즐겼던 이유는, 이기기만 하면 그 돈으로 우리의 뜨거운 가슴을 식혀줄 쐬주파티를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엔 멤버 전원과 공짜 술좌석엔 반드시 꼽사리 끼는 몇몇 친구들을 포함해서 김치찌게 큰 냄비로 두세 개 시키고 적당히 취기가 오를 만큼 쐬주를 마실 수 있는 금액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엔 걸출한 골게터 무머시기가 있어서 파죽의 8연승을 기록하면서 일주일에 두어 번씩 즐거운 회식자리를 갖게되고 점점 더 꼽사리의 숫자들도 늘어가고 있었다.
토요일이었던 그 날도 우리는 아침 일찍 등교를 했다.
상대는 공과대학의 최강 화공과.
하지만 그 날 운 좋게도 무머시기의 헛발질 비슷한, 예측불허의 슛으로 팽팽하던 균형은 깨지고 승부는 그대로 정해지고 말았다. (헛발질이었는지 의도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기에서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그냥 지나간다.) ^^
그리고 정문앞 개골집에서 이어진 쐬주파티.
한참 신나게 먹고나면, 항상 순서는 노래와 젓가락 장단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 전국에 있던 쐬주집과 대폿집들의 테이블 마다 두드려대는 젓가락 자국으로 찌그러지지 않은 것이 없었고 쇠젓가락을 쓰지 않는 집이 없었다.
다 마신 빈 병에 숟가락을 꽂아 마이크인 양 포옴 잡고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차례는 평상시 체육관 시간 때문에 참가하지 못하다가, 그날은 특별히 일찍 끝나 후반전 내내 퍼부어대던 화공과의 공세를 육탄으로 막아냈던 키 186cm 무게 95kg의 거구 H까지 돌아갔다.
아침부터 마신 쐬주 때문에 얼굴이 벌그스름해진 그는 쭈빗쭈빗 일어났다.
천장에 매달려 돌아가는 선풍기를 한 번 힐끗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노래하기 전에 내 한 마디 할란다...
너희들 다 개XX들이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너희 아침에 카네이션 달아드렸어? 이 XX놈들아.
난 임마, 달아드릴라구 해도 달아드릴 분이 없잖아. 개XX들아.
계실 때 잘 하란 말이야! 짜식들아.
그리고 그는 안경을 벗더니 눈을 감고 나즈막히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날을 하루 같이 이 못난 자식 위해
손발이 금이 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몸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다
어머님 어젯밤 꿈엔 너무나 늙으셨어요
그 정성 눈물 속에 세월이 흘렀건만
웃음을 모르시고 검은 머리 희어지신 어머님
몸만은 떠나있어도 잊으리까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다
http://www.youtube.com/watch?v=OBviykNW-Go
사이사이 이곳 저곳에서 쿨쩍이던 소리는 급기야 통곡으로 변해갔고...
그 날 한강물이 넘쳤다는 뉴스가 나왔었던가...? ^^
어버이날이다.
(201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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