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과의 동행

$9.99
$11.48
$14.36
$2.45
$11.07
$19.98
이게 무엇들의 가격들일까?
우리 돈으로 따지면, 2,000원 정도의 것도 있고 한 20,000원 가량의 것도 있다.
애들 사탕 값도 아니고... 더 궁금해지셨나?
답은 얼마 전에 지름과 내가 동행하여 사들인 카메라 가격들이다.
지름이 누구야?
카메라 가격이라고?
쑤근 쑤근....
지름은 제법 유명한 내 친구의 이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신(神)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쓰는 표현에 '그깟것, 돈으로 확 질러버려!"라든가, 아니면"아...그... 돈이나 한 만원 슬쩍 질러줘봐. 당장 효과가 있을테니까..." 할 때 쓰는 질른다 또는 지른다에서 파생되어 나온 이름으로 요즘은 '충동구매'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충동구매 후 '아, 지름신이 강림했다' 라든가 '모른척하고질러버린 카메라' 같은 표현들을 많이 쓰는데, 내 친구 지름은 전자의 표현을 더 좋아하는 눈치이다.
여하간, 지름과 내가 쇼핑한 리스트를 한 번 보기로 하자.
1) Ricoh XR-2카메라 50mm f1.7 Rikenon 렌즈 포함 : $9.99
2) Chinon CM-4 카메라 50mm f1.9, 28mm f2.8, 80-205mm f4.5 렌즈 포함 : $11.48
3) Pentax Spotmatic SPII 카메라 body : $14.36다음 것이 백미(白眉) 인데,
4) Minolta SR-T100 카메라 body : $2.45
5) Pentax K1000 카메라 50mm f2.0렌즈와 Vivitar 2600 플래쉬 : $11.07
그리고 마지막 것은 구색을 맞추느라 조금 비싼데,
6) Nikon FE 카메라 body : $19.98
총 $69.33 (약 64,000원?) 가격에 카메라가 6대, 렌즈5종, 그리고 플래쉬가 하나.
이 정도면 실컷 카메라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볶아먹고, 지져 먹고, 구워 먹고, 삶아 먹어도, 긴긴 겨울 밤 12월 한 달동안은 장난감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잘못 했으면 지름이가 살살 이끄는대로 기 백 달러 주고 Canon F 나 Canon EOS-1N 또는 Nikon F100 쪽으로눈이 돌아갔겠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5-6 번은 돌아갔었다), 뱁새 눈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떨리는 손을 키보드에서 멀리하느라 힘 들었었다.
그리고 괜히 크리스마스 라는 season 탓에 좀 더 비싼 (좀 더 좋은?) 카메라에 콱~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도 많이 생겼음도 고백한다.
예를 들어 Leica M6 라든가 Contax G2 같은 것들.....(으음!!!! 참아라. 이름만 떠올려도 손이 부르르르 떨리는구나)
옛날부터 난 지름과 유난히도 친했던 것 같다.
자린고비 정신을 이어 받긴 받았는데, 한 번 허물어질 땐 사정없이 파도에 씻겨가는 모래성과 다를 바 없다.
꼬깃꼬깃 세뱃돈 모으고 버스 회수권 절약하려고 걸어 다닐 때도, 문방구 진열장의 좋은 플라모델을 보면 책가방 던져놓고 번개처럼 지갑들고 뛰어나갔고,혼자 살 때도 생일날, 크리스마스날이 되면꼭 스스로 듬뿍 선물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이 생긴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슈퍼에 가서, "자, 오늘은 각자 무조건 아무거나 오천원 어치씩 사는거야."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억압된 형식으로 (액수를 보라, 일인당 5000원!) 나타난 것이었고, 이제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합법적인 이유를 가지고 지름과의 시간을 즐기려 하고 있다.
카메라 분해 하는 사위를 보시며, 우리 장모님 말씀 하시길,
"자네는 참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네."
뭐, 별로 듣기 싫은말씀은 아니지만,
'고상(高尙)' 은 영어로 'noble',
'noble' 은 즉 'high class',
'high class' 란 '비싸다' 는 의미.
즉, '비싼 돈 드는 취미' 라는말씀 아닐까?
하여간, 여기서 지름과의 밀접한 유대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취미가 골동품 카메라 수집이 아닌, 고물 카메라 수리 라는 점이다.
골동품 카메라 수집이라면 이미살고있는 집 두세번은 팔아먹고도 모자랐을 것이다.
고물 카메라 수리?
좋은 말로는 '복원' 이다.
가치를 잃은물건에 가치를 다시부여해주는 소중한 recycler.
이번에 구입한 6대의 카메라가 모두 정상 상태인 것은 아니다.
2대는 필름 어드밴스 레버와 셧터 버튼이 엉킨 상태이고, 나머지 4대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차광폼 (light seals) 들이 떨어져나가거나 녹아붙었거나 또는 CLA (cleaning, lubricating and adjusting) 이 필요한 상태들이다.
어쨌거나 지름과 신나게 한바탕 돈을 쓰고 내 작업대에 그득하게 자리잡을 카메라들을 생각하면, 난 벌써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득 받은 셈이다.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다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세계로 그들을 돌려보내는 즐거움으로겨울밤들은 전혀 길게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다.
이 작업대가 텅 비고나면, 그땐 또 지름과 동행하여또 다른 카메라들을 재활센터로 끌어모으는 즐거움이 다시 찾아오겠지...
늘 지름과 동행하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200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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