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어젯밤
이 따뜻한 바닷가 마을에도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겨울에는 얼음처럼 차거운 비만 내리는 이곳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긴가 민가...
요즈음은 예보도 잘 안맞는다고 하던데...
아침 일찍 고개를 갸웃이 올려보니 담장 너머 메마른 나무 위에 하얀 눈이 얹혀있다.
우와- 눈이다.
눈길을 한 시간 달려 회사에 갈 걱정보다는 오랜만에 보는 눈으로 마음부터 설랜다.

30년만에 오는 추위란다.
30 센티미터는 너끈하게 넘어설 적설량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카메라를 빼놓을 수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즌인 관계로 선반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던 Aria 에 필름을 넣는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추위를 이겨내며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아이비가 유난히 강해 보이기도 하고...
쌓인 눈으로 모든 소리가 공명을 잃고 귀 막힌듯 가깝게 들려온다.
이느낌이 좋다.

축대 밑으로 휘장처럼 늘어진 얼은 눈 밑으로 이끼가 살아있다.
유난히 더 진초록색을 띄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다시 눈이 오기 시작한다.
어- 아직 가야할 길이 먼데...
헤엄치듯 나아가는 자동차의 엑셀레이터를 지그시 조금 더 밟는다.

발이 묶인 직원들은 절반이나 나오질 못했다.
정신없이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들의 몫까지 해치우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
점심 챙겨먹을 생각을한 것이 사치였던가?
아침에 출근하며 따놓은 콜라 한 캔이 김이 모두 빠진 채로 날 기다리고 있다.
미끄러운 퇴근길 차 안에서 기여코 그 캔을 비워낸다.

길들이 제법 많이 뚫렸다.
출근을 포기한 자동차들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일주일 동안 매일 눈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뉴스앵커의 말을 들으며 차의 시동을 끈다.
무사히 돌아왔다!

잠시 운전대를 붙잡고길가에 퍼진 적지 않은 숫자의 차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출퇴근길에서 그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운전자들도 빨리 그 차들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내일도 무사하길 간구한다.
눈사람을 만들고잊은듯 그대로 남기어진아이들의 장갑을 집어든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따뜻한 노오란 불빛이 쏟아져 나온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동그란 얼굴 셋이 합창하듯 소리지르며 환호성을 연발한다.
따뜻한 커피 냄새도 풍겨나오고...
아아, 우리집에 돌아왔다.
대설주의보가 다시 뉴스를 타고 울려나온다.
(200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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