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산에 빠지다
녀석들의 성화가 심하다.
...해서 봄방학 기념으로 우리 동네 뒷산(?)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가만 있자...
쓸만한 카메라는 많이 있는데, 마땅한 렌즈가 달린 친구가 별로 없다.
최선의 선택으로 Nikon F100 에 200mm Nikkor 를 끼우고 책상 위에 있는 Reala ASA100 한 통을 쥐었다.

우리가 사는 곳, 무길도 근처는 비가 많은 지방으로 유명한데...
산 이름은 "비 더 많이 옴" 인걸 보니 여기도 상당히 비가 많이 오는 듯... ^^
멀리서 바라보니 "비 더 많이 옴" 산은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몇일 전 봄비가 제법 내렸는데, 아마 이곳은 고도 때문에 눈이 내린 모양이다.
아내와 녀석들의 환호성으로 차가 기우뚱 기우뚱--
"어허, 운전 좀 하자!"
말이 먹힐 나이들이 아니지... --;;

나무 끝에 엊혀있다가 따뜻한 햇살에 녹아 떨어지는 눈덩이들에 차 지붕이 뚫리는 줄 알았다.
산길로 들어서는데 산지기들이 눈사태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를 당부한다.
하모요... ^^
나무들, 나무들, 눈 나무들.......
아, 이럴 때 Finlandia 라도 들으면서 가야 하는건데... --;;
그래도, 하여간 여기서부터 멋진 광경을 잡았다가 보여드리기는 하지만서도, 그 전에 고백 내지는 사과의 말씀을 먼저 올린다.

부리나케 나오면서 끼웠던 Reala 필름이 카메라 수리시 쓰는 실험용이었다!!! --;;
이 시점까지는 무길도 한량도 그걸 모르고 마구 찰칵 찰칵...으 --;;;
산에서 내려 오자마자 1 hour photo 로 달려가 나온 결과는...?
집안 곳곳이 잘 투영된 모습의 이중촬영 사진들의 백미!
그래서...할 수 없이 cut cut cut & ...
지금부터 보시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쪼가리 사진들입니다. --;;

아무 것도 모르는 무길도 한량과 그 일파들의 즐거움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더라.
"아아, 감동이야, 감동..."
을 연신 반복하는 아내.
"아빠, 찍었어? 찍었어?"
꼭 두 번씩 다그쳐 묻는 첫째 아그.
하늘 보고 산 보고... 뭔가 생각하다가 혼자 쫑알쫑알 대는 둘째 아그.
무길도 한량?
촛점 맞추느라 찡그리고 찡그려서 왼쪽 눈가에 주름이 대여섯배는 늘었다카더라... ^^

장대한 눈산의 위엄 앞에서,
또 그에 동반하며 서있는 겨울나무들의 아름다움.
아, 우린 참 lucky 했다.
우리 van 보다도 높이 쌓인 눈 옆에서 포즈를 잡아보며, 즐거운 경험을 만끽했다.
겨울이었다면 이곳은 도로가 차단되고 와보지도 못했을텐데...
4월의 눈산이라......

벌써 이런 사실을 예상한 사람들은눈신발을 챙겨 신고 snow tracking 에 나섰다.
삼삼오오 모여서 장비를 점검하고, 썬블락 로션을 바르고,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하고...
휘파람과 함께 하얀 눈을 뚫고 산을 헤쳐나갔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순백의 설원...
크리스마스 카드를 장식할 만한 수 십 미터 높이의 눈 덮인 나무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같이 즐거움이었다.

"비 더 많이 옴" 산을 지키는 단층 오두막은 눈에 깊이 잠겨 처마만 남아있다.
집채만한 snow blower 들은 쉴 새 없이 도로로 부터 눈을 불어내어 조금씩 조금씩 통행가능한 구간의 비율을 높여나가고 있었다.
얼음이 아직 덜 녹아 통행이 위험한 곳엔 산악경찰들이 안전운전을 계도했다.
모두모두 안전하게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점심거리를 준비하지 않은 우리는 적당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가기로 한다.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던 첫째 아그의 배를 째려보며...... ^ㅇ^

다음 주면 무길도를 방문하실 우리 부모님.
특히 30여년 전에 겨울 설악산 종주를 하신 적이 있으신 아버지.
이 아름다운 눈산에 모시고 올 때까지 이 눈이 녹지 않고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세월에 무뎌진 당신들의 가슴에서 감동으로 인한 감탄이 터져나오길 고대해본다.
무길도 한량도 제대로 된 필름 챙겨들고, 다시 찰칵거리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는 줄어야 할텐데....
아, 난 왜 그런지 몰라... --;;;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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