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축제

가을이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하늘 높이 솟아 내려다 보던 가문비나무가 날 생각케 한다.
풍성한 수확... (흠, 모든 사람이 처음 생각하는 거니까...)
존재의 쓸쓸함... (흐음, 쓰고 보니 조금 멋진 것 같네 ^^)
...
뭐, 이런 거 말고, 뭔가 진짜 리얼한 것을 한 번 생각해보자.

가을이란...
곱창전골 후 거기에 비벼놓은 볶음밥...
전골이 적당히 끝나면,국물 조금 남겨서 밥 두 공기 추가하여 들이붓고 빠삭하게 구운 김을 부스러뜨리는데, 전골 건더기 남은거 조금에 김치쪼가리며 실파 두어 뿌리며 두어 장의 깻잎이며 골고루 잘라 넣은 후 섞어 비벼주다가생계란 하나 탁 터뜨려 넣고 참기름 두루두루 두르고 깨소금 후드르르 뿌려 볶아주는데...
바닥쪽을 조금 꾸득꾸득하게 태워야 맛있다고...? ^^
이 볶음밥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전골을 건너뛸 수 없을까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골 국물없이 볶음밥이 없기 때문에, 대답은 노. ^^

한여름 뜨거웠던, 그러나 고혹적이던꽃들의 향연...
좀 더 많은 햇빛을 위해, 한 뼘 만큼 하늘로 더까치발 돋우던 신록의 치열함...
가을은, 이 모두가 끝난 후의 뒷풀이 자리이다.
무대 한가운데를 때리던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후 벌어지는 주변인들의잔치.
큐 싸인 놓치고 당황했던 이야기랑, 준비했던무대장치가 제때에 작동되지 않아 거품물던 이야기랑, 계획대로 멋진 무대가 이루어져 관객의찬탄소리가 흘러나온 이야기랑......
이런 거 다 없었으면 있으나마나 한 뒷풀이나 마찬가지.

실로, 온산을 물들이는 단풍은 주변인들이었던 나무들에 의한 뒷풀이 축제에다름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 사람도 있다.
Just before the death of flowers,
And before they are buried in snow,
There comes a festival season
When nature is all aglow -Author Unknown
꽃들이 죽어 눈속에 묻히기 바로 직전
모든 자연이 벌겋게 상기되는 축제가 된다

가을을 나타내는 영어단어 중 "fall"의 여러가지 뜻 중엔 이런 게 있다.
n. a loss of greatness or status (위대함이나 신분의 상실)
예문) Fall of the Roman Empire (로마제국의 몰락)
그래서 가을은모든 생물들이 영광의 빛을 잃고 쇠락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단지 화려한 단풍뒤에서 스러져가는 쓸쓸한 모습을 가려보려는늙은 가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들어 떨어지는고엽들이 하나씩 둘씩 발끝에 차일 때가 되면, 그옛날의위대했던 날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단풍이 아닐 것이다.
그대, 지금 쇠락하고 있는가?

흐르는 물에 나뭇잎을띄워본다.
흐르는 물처럼 세월도 흐르고,계절도 따라 흐르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이야기 했듯이,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불안스럽게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이는 모습으로,
마지막 정열을 태우고자 준비하는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흐르는 물에 띄워보낸 나뭇잎에서 가을을 읽으려 애쓰면서...
우리들의 축제를 위하여!

(200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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