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2일 화요일

류꾸샤꾸 가득한 행복

류꾸샤꾸 가득한 행복










칠성사이다 한 병.
오렌지 환타 한 병.
바니 드롭프스 한 봉지.
연양갱....음... 이건 두 개.
만화 풍선껌 한 통.
사과 하나.

또... 뭐가 있나?
그렇지, 과자들을 빼먹었네.
티나크랙커 한 봉지.
뽀빠이 하나, 라면땅 하나. 짱구 하나.
에... 크라운 웨하스도 하나 넣어볼까?
소년은 웨하스를 집으러 손을 내밀었다가 잠시 망설인다.
에이... 이건 가져갖다 다 먹지도 않을텐데...
그래, 봄에도 가져갔다가 다 으깨져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잖아...

"다 되었니?"
반찬가게 아줌마의 재촉에 그는 얼른 손을 거두어들이고 돌아선다.
아줌마는 소년이 골라놓은 것들을 그새 다 비닐봉투에 담아놓으셨다.
"아줌마, 현수는 뭐 가져가요?"
"모르지... 걘 지가 알아서 이것저것 집어가니까..."
같은 반 현수는 반찬가게 아줌마의 딸이다.

아줌마가 외상장부를 꺼내느라 봉투를 옆으로 밀어놓으시자, 그 뒤에 숨어있던 군것질꺼리들이 나 여기있소 하고 고개들을 내민다.
아폴로, 쫀디기, 오브라이트 (일명 테이프), 페인트사탕 등등 & 등등등...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새로 나온 '바람초' 사탕 이다.
기름한 원통형 투명 플라스틱통에 오렌지색 뚜껑을 열면, 약국에서 파는 CC정 보다 새콤한 오렌지맛 정들이 12개 들어있다.
소년은 얼른 만화 풍선껌을 봉투에서 빼내고 바람초를 두 개 집어넣는다.

아줌마가 소년의 그런 모습에 웃으시더니 선반에서 백도복숭아 통조림을 꺼내어 봉투 속에 쑥 집어 넣으신다.
"어? 그건 아닌데요..."
"아냐, 이건 재밌게 잘 다녀오라고 주는 아줌마 선물이다."
"어유, 안그러셔도 돼요. 지금껏만으로도 충분해요."
"어허- 그러는 것 아니다. 어른이 주시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야지."
"고맙습니다. 그럼 차라리 그거 말고 이걸 하나 더 주세요."
소년은 통조림을 아줌마에게 건네드리고, 대신 바람초를 하나 더 집어든다.

골목 어귀엔 벌써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저녁부터 김밥을 싸는 집이 있는지 참기름 냄새가 솔솔 풍겨나왔다.
새벽이 되면, 소년의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셔서 밥을 새로 짓고, 촛물을 만드시고, 계란을 부쳐 소년이 좋아하는 유부초밥과 김밥을 싸주실 것이다.
갈은 고기가 살짝 들어간 유부초밥이나 어머니가 멋들어지게 만드시는 공작꼬리 김밥은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며 먹고 싶어하는 별미였다.
많은 시선들 속에 첫 유부초밥을 나무도시락에서...
....!!!
아이쿠! 나무도시락을 빼먹었다.
소년은 오던 길을 180도 돌아 반찬가게로 번개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실상 소풍은 소년이 가지만, 그 날 모든 식구의 도시락은 유부초밥과 김밥으로 통일된다.
따라서 가족 중 한 사람만 소풍을 가도 모든 식구의 마음은 다음날에 기다리고 있는 별미로 인하여 전날 저녁부터 분위기는 더더욱 화기애애하게 고조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어린 동생들은 영문도 모르면서, 반찬가게에서 비닐봉투에 무언가 가득 사가지고 들어오는 소년을 맞이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소년은 모르는 체 동생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 구석에 조용히 봉투를 갖다놓았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 소년은 류꾸샤꾸(ruck sack의 일본말) 에 준비물들을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칠성사이다, 환타, 연양갱, 바람초....
한 가지 한 가지 먹을 것이 채워짐에 따라 류꾸샤꾸가 밝아지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먹을 것들을 내 맘대로 마음껏 먹을 기회가 있었더냐?
마음은 벌써 내일 소풍장소에 이미 도착해있는 듯 했다.

똑. 똑.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먼저 어머니의 얼굴이 쑤욱 내미시고 그 밑으로 수줍은 듯, 영문을 몰라 어벙벙한 듯, 두 꼬마들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오빠가 너희들 줄 게 뭐 좀 있는지 함 볼까?"
어머니는 반윙크 비슷한 눈짓 한 번 던지시고 두 아이들의 등을 슬쩍 떠밀어 소년의 방으로 밀어넣고 돌아가셨다.
이것은...??
잠시 어머니의 심중을 헤아리며 소년은 헤벌죽 웃고 있는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오빠, 어디 가?"
"응. 소풍."
첫째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와 소년의 곁에 앉자 둘째 녀석도 따라와 앉았다.
"저게 다 뭐야?"
"으응... 소풍가서 먹을거."
"소풍, 먹으러 가는거야?"
"으으응... 그렇지, 뭐."
"먹을거 많아?"
류꾸샤꾸에 가득한 것이 먹을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두 녀석의 시선이 류꾸샤꾸로 부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소년은 류꾸샤꾸를 잡아당기며 어떤 것을 희생할 것인가를 재빨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연양갱, 이건 하나는 내가 먹고 다른 하나는 남겨와서 연양갱 좋아하시는 아버지 드릴 건데...
티나크랙커, 이건 내가 꼭 먹어주셔야 하는거구...
바니 드롭프스, 이건 남겨와서 누나 주어야 하구...
사과, 이건 어머니가 꼭 먹으라고 했으니까 가져가구...
그럼, 남는 건 뽀빠이, 라면땅, 짱구 하나씩과 바람초 3통....
음... 고민이구만. --

그는 류꾸샤꾸에서 뽀빠이와 라면땅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웃음이 번져가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더 뿌듯해옴을 느꼈다.
"오빠, 이거 먹어도 되는거야?"
그래도 첫째 녀석이 한 살 나이가 더 많다고...
둘째 녀석은 벌써 봉지에서 라면땅 쪼가리를 꺼내 입으로 넣고 있다.
"그럼~. 다 먹어. 그리고..."
바람초를 두 개 꺼냈다.
"이건 비싸니까 아껴 먹어야 돼. 입에 넣고 있으면 입이 막 시어지거든. 그래도 씹어 먹지말고 꼭 혀 위에도 놓고 살살 끝까지 빨아먹어야 돼. 알았지?"
끄덕 끄덕하는 두 녀석들 바지 주머니에 바람초 한 통씩을 넣어주고, 소년은 동생들과 같이 라면땅과 뽀빠이 파티에 동참했다.

이 류꾸샤꾸는 내일 아침만 되면 또 맛있는 먹을 것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만드시는 유부초밥과 김밥만 있다면, 세상의 어느 류꾸샤꾸 보다도 자신의 류꾸샤꾸가, 가장 행복한 류꾸샤꾸라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다.
그러기에 가져간 과자들은 남길 수 있어도, 어머니의 유부초밥과 김밥은 남겨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머리맡에 놓은 류꾸샤꾸를 어루만지며 흡족한 마음으로 소년은 잠자리에 들었다.
어머니께서 방문에 살짝 노크하시며 말씀하셨다.

"얘, 내일 피곤할텐데 일찍 자거라."
"네, 잡니다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자는 동안 내내 소년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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