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청초 우거딘 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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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草 우거딘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만 무텄는다
盞잡아 권할 이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임 제)




푸른 풀들만 우거진 골짜기에 자고 있는가 아님 그냥 누워 있는가
젊고 아름답던 그 얼굴은 어디 가고 백골만 여기 묻혀있단 말인가
이제 술잔 들어 권할 사람이 가고 없으니 그것이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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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길도한량이 가장 애송하는 시조. ^^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선조 1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고 화사(花史),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임백호집(林白湖集) 등을 쓰기도 한 문인이다.
서도병마사로 부임하던 길에 마침 황진이 무덤 옆을 지나게 되었고...
돌보지 않아 쓸쓸히 버려진 황진이의 무덤을 보자 제문을 짓고 무덤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 일로 나중에 파직을 당하게 됨으로써 이 시조도 유명해졌다.
가버린 기생을 위해 시 한 수 부치는 것 쯤이야 그 당시 풍류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도 당쟁의 희생양이 된것 아닌가 싶다.

전하! 신임 서도병마사 임제는 부임길에 황진이의 무덤에 헌화하였다 하옵니다. 백성을 살펴야 할 도사가 기생의 무덤에서 술잔이나 기울였으니... 임제를 엄벌에 처해 주시옵소서.
에잉--- 저런 고얀...
전하! 아니옵니다. 기생도 백성이고, 돌보지 않는 무덤도 살펴야 할 민생사의 일부분인줄 아뢰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흐음... 그것도 맞는 말이군.

어찌 되었건 그가 부임지에 도착하였을 땐, 이미 해임장이 특급우편으로 날라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제는 당파싸움에 비분 강개하여 벼슬을 떠나 명산을 떠돌아 다니며 글을 쓰며 지내다가 10년쯤 뒤에 당대 명문장가로서의 삶을 마친다.

기생들처럼, 그의 풍류와 문재를 같이 즐길만한 이가 당시엔 별로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황진이가 없음을 슬퍼했던 그는 또 다른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 받은 시조로도 유명해진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아, 이건 아니지. ^^ )

한편, 그의 아버지 임진(林晉)은 절도사를 지낸 무장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활 지어 팔헤 걸고 칼 가라 녀폐 차고
鐵瓮城 外에 통개 베고 누어시니
보완다 보괴라 솔의에 잠 못드러 하노라

활을 만들어 팔에 걸고 칼은 갈아 옆에 차고
철옹같이 견고한 성 밖에 화살통을 베고 누었는데
보았느냐 보았다 하는 군호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도다

글 잘쓰는 집안이었나 보다.
우리집도 이런 재주가 있으면 좋으련만... ^^;;

(201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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