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계란 후라이를 하고 있다.
지글 지글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계란을 보며 저희들끼리 즐겁다고 난리다.
'매일 먹는 계란 후라이가 그리도 좋을까?'
하기야 나도 역시 그 말로 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계란의 영역에는 끝이 없다.
각종 음식에 부재료로 들어가는 것 말고 계란 하나 만으로도 계란 후라이, 삶은 달걀, 구운 계란, 수란, 계란찜 심지어는 날계란으로 밥 비벼먹기까지.
계란 후라이에는 또 노른자가 살아있는 sunny side up, 살짝 뒤집은 over easy, 살짝 뒤집어 반쯤 익힌 over medium, 뒤집어 완전히 익힌 over hard, 뒤집으며 노른자를 탁탁 투드려 터쳐 익힌 fried, 아예 처음부터 곤죽을 만들어 먹는 scrambled 등 그냥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군침이 입안 가득히 돌기 시작한다.
아, 갓 삶아서 껍데기 벗긴,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삶은 계란에 소금을 찍어 먹는건 또 어떠한가?
이럴 때는 soft boiled 건 hard boiled 건 상관없이 그냥 맛있다.
소시적 나의 아버지는 덴마크 달가스의 사상을 한국에 접목시켜 농촌혁명을 일으키고자 노력한 청년 농촌운동가이셨는데, 시골의 한 야산을 개간하여 진흙으로 집을 짓고 과수원을 만들어 당신의 꿈을 펼치며 농촌운동의 표본이 되고자 노력하신 분이었다.
그 과수원 한 켠으로 본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닭장 한 채가 있었다.
양계장집 아들, 계란 실컷 먹었겠지?
원, 천만의 말씀.
그게 모두 돈이기 때문에, 그 당시 같이 일하던 식구들이 한 열 명 남짓이었는데 한결같이 쌀 한 톨 안들어간 꽁보리밥에 된장과 짠지가 반찬의 전부였다.
아, 편찮으신 할아버지 진지에는 꼭대기로 부터 수직으로 5cm 내려가면 생달걀 하나가 항상 묻혀 있었고, 귀신같이 그것을 알아챈 어린 이 몸이 철도 없게 때때로 할아버지의 영양식을 뺏어먹곤 했다.
그렇게 '풍요 속의 빈곤' 이라는 말처럼 계란에 파묻혀 살면서도 항상 계란을 갈망하면서 살아가던 어느날이었다.
모처럼 방문한 고모 내외가 닭장 뒷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본채로 모셔오라는 할아버지 말씀.
총알처럼 내리막길을 내달아 닭장 뒷방 문고리를 잡아채려는 순간,
"호호홍, 자기야 이거 먹어봐. 이놈은 암놈일까 숫놈일까?"
"흐흐흥, 그려 그려"
문을 벌컥 여니 고모는 옆 계란판에서 계란을 두어개 손에 집어들고 고모부에게 내밀고 있었고 얼굴에 웃음 가득한 고모부는 또 다른 한 개를 어금니에 부딪혀 깨뜨리고 있었다.
이, 이런...... 어린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난 하나 마음 놓고 먹어보지도 못한 걸...
닭장 뒷방은 원래 계란들을 모아 쌓아두기도 하고 병아리 감별도 하는, 그런 곳이라 계란은 천지였으니, 젊은 부부도 신이 났었던건 당연하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달걀을 사면 한 번에 한 열 판씩 사시곤 했다.
그래서 일요일이 되어 교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모든 슬하 자식들이 모이면 한 집당 두 판씩 계란을 나누어 주셨다.
그것은 마치 건강을 배급받는 신성한 의식처럼 거르지 않고 매주마다 행해졌고, 우리 모두는 할당량을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각자의 삶터로 또 흩어져 갔다.
그리고 다 같이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구워 먹고, 삶아 먹고, 깨 먹고......
"건강을 위해 하루에 계란 하나씩은 먹어야 한다."
"그래도 계란 만큼 싸고 좋은게 없단다."
정말 그랬다.
우리 식구 모두가 큰 병없이 건강한 것을 보면 계란의 공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옛날 읽던 위인전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계란 하나를 주면 그것을 깨지지 않도록 잘 가져가서 일본인 상점에 가서 공책 하나와 연필 한자루를 샀다고 했는데, 지금은?
계란 하나로 연필 반 토막이나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싸면서도 계란의 주는 의미는 또한 굉장히 특별하다.
암만 잘 차린 밥상에도, 하얀 쌀밥 옆에 떡 하니 놓이는 계란 후라이 하나 없으면 어딘지, 뭔가가 빠진듯한 느낌....
도시락 싸면서 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계란 후라이가 통째로 턱 하니 덮여 있으면, 우와...... 하면서 쏠리는 부러운 눈빛들.
장조림 반찬 보다 노란 노른자가 동그랗게 보이는 두툼한 계란이 더 끌린 이유는 무얼까?
한 때 다녔던 직장에 식당이 따로 있던 곳이 있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점잖은 사오십대, 많게는 육십대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작업장으로 돌아오는데, 한 직원이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어 거친 욕설을 하면서 오고 다른 직원들은 모두 한 걸음 뒤처져서 빙긋 빙긋 웃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 직원을 불러서 이유를 묻자,
"아, 글씨... 그 나쁜 자식이 다른 사람들은 전부 계란 후라이 주는데, 나는 빼놓고 안주잖아요."
"그럼 달라고 하시지 그랬어요?"
" 아, 그렇잖아도 그렇게 얘기했더니, 계란 후라이 두 개 먹을라고 머리 쓴다고 도리어 나한테 욕을 하잖아요."
남들 다 있는데, 계란 후라이 빠진 식사를 하면서 정말 부아 났으리라.
먹어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계란이다.
언젠가는 한 번 죽도록 먹어봐야지 하고 벼르던 계란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가족에게 총질하고 자살한 한 한국인이 과거 양계장을 운영했던 한 야당총재의 아들이라는 뉴스는 한 때 그 아버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나에게 슬픔이었다.
또, 영국에서 날아온 대단위 사육용 양계장의 실태를 고발한 비디오를 접하면서 우리가 먹기 위해 얼마나 비겁한 짓들을 하는 지는 정말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렇다고 닭들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KFC 앞에서 대낮에 벌거벗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냥 그런 일들과 관련되지 않게, 건강한 닭들을 지키면서 점잖게 계란을 먹을 수는 없을까?
이런 심뽀로 언젠가는 달걀귀신 모습처럼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냥 아이들의 계란 후라이 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저런 두서 없는 생각을 해봤다.
이크크... 내 것도 했단다.
식기 전에 먹어야지.^^
(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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