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8일 월요일

노란색이다



노란색이다






빗 속을 걷는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점심 때가 되어도 여전하다.
행여 sun break 이라도 있으면 부리나케 뛰어나가 우기(雨期) 내내 부족하던 비타민 D 도 얻을 겸 해바라기를 하렸더니, 그만 혼자만의 계획에 차질이 왔다.
먼 하늘을 보니 동서남북 어디 한쪽도 구름색 옅은 곳이 없다.
그래도 나가봐야지...
카메라를 집어들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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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 있던 방수점퍼를 꺼내 걸치고 카메라를 옆구리쪽으로 비스듬하게 밀어넣는다.
노란색 점퍼에 빗방울이 하나 둘씩 얻혔다가 바쁜 사람들처럼 또르르르 굴러 떨어진다.
이 점퍼는 부모님께서 우리집에 처음 오실 때 사다주신 것.
비가 많이 오는 곳이란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세트로 한 벌씩 사다주셨다.
노오란 색깔로...

그 때 막 사십줄을 갓 넘어가던 나는 예쁘다는 아버님 어머님 말씀에,
비만 오면, 봄맞이 산보나온 노란 병아리들처럼 발랄하게 거리에 섰다.
야아, 참 예쁘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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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게 고어텍스(Gore-Tex) 여...
겉은 방수에, 속은 뽀송뽀송...
혹시라도 내가 싫어할까봐 열심히 옷감의 기능성 재질을 설명하시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의복의 소재도 참 많이 발전했네요.
그럼. 등산할 때도 이것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단다.

그게 벌써 칠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다.
세월이란게 정말 쏜 살처럼 흘러간단 말...새삼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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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좋은 방수점퍼를 입고 추적대는 빗속도 걱정없이 걸으면서도....
그래도 어딘가 좀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 사방을 힐끔 힐끔 살핀다.
야아, 참 예쁘다야.

몇 걸음 걷지 않아길가로 줄지어 나란히 선 노오란 수선화들과 조우한다.
어이, 너도 같은 색이네? ^^
나만 그런가? 저기 튜울립도 올라왔어.
어... 그러네.
점퍼에 알알이 얹힌 빗방울을 후드득 떨어내자 수선화들이 긴 목을 젖히며 까드득 웃음짓는다.
오, 저기 이름 모르는 녀석도 노란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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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길도 점퍼는 너무 샛노래~
튼튼하지요~ 질기지요~
콧노래를 부르며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간다.
큰 키의 나무들이 드리운, 부채살 같은 나뭇가지들이 제법 빗발을 막아준다.
그리고 거기, 한 무더기의 새로운 튜울립들이 나를 맞이하여 선다.
노란색, 주홍색... 아, 그리고 노란색과 자주색의 mix.
아마도 옮겨 심은 후 처음 비를 맞아보는지 흥분에 가볍게 떨고 서있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야아, 참 예쁘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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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새로운 꽃들이 있어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함을 크게 해준다.
산책을 마칠 즈음, 어디서 나타났는지 햇님이 쨍! 하고 여린 빗방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빠진 아랫송곳니 자리를 꺼멓게 물들인 채, 가득한 함박웃음으로...

좀 진작에 좀 나오시지...
왜 늦어서 싫었수?
아, 웬걸요.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나는 좋아하지요.
근데, 왜...?
그냥... 오늘따라 노란색이 유난히 짙어서... ^^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아, 예쁘다야.





(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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