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세샹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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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샹 사람들이 입들만 셩하여서
제 허물 전혀 닛고 남의 흉 보는괴야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을 고티과뎌

                                                     (인평대군)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살아서
자신의 허물은 모두 잊고 남의 흉만 보는구나
남의 흉 보려 하지말고 자신의 허물이나 고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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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시.
인평대군의 시조를 이야기하면서 첫째 아들 소현세자를 떠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가 인질에서 돌아오게 되었을때엔 이미 새로운 서양사상과 친청(親淸)으로 무장하여 조선의 개혁을 꿈꾸며 돌아왔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돌아온 그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 인조로부터의 싸늘한 냉대 뿐.
인조는, 청나라가 자신을 폐위시키고 소현세자가 새로운 왕으로 세울까 하여 세자를 의심하고 있는 마당에, 기존 친(親)명나라 사대를 배척하고 자신을 무릎꿇린 친(親)청나라라니...
결국 소현세자는귀국 두 달만에 병이 들고, 곧 독살되고 만다.

소현세자가 죽은 후, 부인인 민회빈 강씨를 인조의 수라에 독을 넣으려 했다고 몰아 사약을 내리고, 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제주로 유배를 보내는데...
그곳에서 두 아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당시 네살배기였던 막내는목숨을 건져... 효종10년 경안군으로 복위되나 6년 후 22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는다.

불행했던 소현세자의 이야기인데...
스토리 정리를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요즘 인기가 좋은 한 드라마의 배경이 이즈음인 모양인지 좋은 글들을 많이올려놓고 있다.

글, 그림에 뛰어났던 인평대군이 또 한 가지 유명한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과를 도입한 사람이라는 점.
사과?
먹는 사과가 맞다. ^^
중국을 다녀오면서 그는 사과나무 가지를 처음 가져와 심어 결실을 보았다고...

인평대군의 시조 중엔 이런 것도 있다.

바람에 휘었노라 굽은 솔 웃지마라
춘풍에 핀 꽃이 매양에 고우랴
풍표표 설분분 할제야 나를 부러리라


쓰다보니 별 내용이 없어 좀 헛헛하다.
그냥 시조만 읊음만 못하지 싶다.
나이가 들면서 쓸데없는 말이 느는 것인가?... --;;




(20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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