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8일 월요일

Minolta Maxxum 9000 (1)

Minolta Maxxum 9000 (1)









전설에 의하면......

1975년 Olympus M-1 으로 촉발된 SLR 카메라들의 제1차 세계대전, 즉 전기전자기술에 의한 경박단소 및 자동화의 싸움은 승자와 패자를 뚜렷이 구분시키면서 차츰 Canon 과 Nikon 의 2强과 Pentax, Olympus, Minolta 의 3中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었다.



이 때, 이 같은 구도는 정말 참을 수 없다면서 버럭 화를 내며 장팔사모창을 꼬나들고 뛰쳐나온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미노루타 구천(九千).
그가 휘두른 장팔사모에 장착된 첨단 장치는 바로 전동식 오토포커스로써, 다른 수동 카메라들이 1-2초 라는 시간에 조준 및 발사를 할 수 있었던데 비해, 물경 초당 5-6방씩이나 터뜨릴 수 있는 대단한 것이었다. (너네 다 죽었어!)
그의 동생 칠천(七千) 과 함께 세계 만방의 적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제2차 SLR 세계대전.



칠천이 병졸들을 막아서는 동안 구천은 부지런히 장수들을 상대로 치고 나갔다.
한동안은 강력한 Canon 이나 Nikon 에서도 상대를 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강자(强者)의 탄생과 함께 솥발과 같은 3强 정립(鼎立) 의 형국(形局) 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1985년.



유럽에서는 Dynax 9000, 일본에서는 알파 9000, 미국에서는 Maxxum 9000 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진 이 친구는 워낙 유명하여 그의 이름을 듣기만 하면, 젖먹이도 울음을 멈추고 사진사에게 치---즈 했다던가?
이대로 가다가는 미노루타 천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즈버, 호사다마(好事多魔) 라고 했던가?
첫 딴지는 예상치 않은 곳, 석유회사 Exxon 에서 들어온다.
미국명 Maxxum 이라는 명칭에 멋을 부리느라고 X자 두 개를 살짝 겹쳐놓았는데, 이거이 자기네 고유한 것이라고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두번째 딴지는 Honeywell 이라는 미국 카메라업체가 오토포커스 방식이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딴지를 걸어온 것이었다.
결국 길지 않은 시간에 당시로는 엄청 큰 돈, 수백만 달러의 수업료가 지불되었다.



마지막으로 Minolta 의 패착은 경영진의 잘못된 전략 수립으로 인한 것이었다.
Kodak 에서 시작한 APS (Advanced Photo System) 필름 방식의 카메라가 미래의 대세로 판단,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Minolta.
하지만 대세는 APS 가 아닌 디지털로의 전환이었다.
결국 시대를 앞서간 칠천이, 구천이 형제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Sony 로 흡수되는, 비운의 왕국이 되어버린다.

아직도 많은 미놀타 애호가들에게 Maxxum 9000 은 신화로서, 컬트로서 존재하고 있다.

(2008.10.28)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