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손보았던 Olympus OM-4 를 팔까 말까 고민하면서 낑낑거렸다.
처음 나왔을 때 너무도 갖고싶었던 친구라 놓기가 쉽지 않다.
Fuji Reala 100 필름 한 통 끼우고 아침 산책길에 데리고 나섰다.

새벽녘부터 흩뿌리는 비로 벤치가 젖어서 그냥 사진만 찍고 간다.
그래도 OM-4 를 꺼낼 수 있을 만큼만 오는 비가 고맙다.

바윗돌 사이에 사이좋게 어울려있는 아이비도 찍어주자.
조금만 지나면 이들도 완전히 붉은 색으로 변하겠지.

이 친구는 옆의 잔풀과 이야기하느라 계절을 잊은 모양이다.
만나는거와 헤어지는거와...
곧 겨울이 올거라는 소식도 함께.

Zuiko 50mm 1.4 Auto-S 를 낀 OM-4, 멋지게 사진을 잡아준다.
이 친구도 한 때는 저 꽃 만큼이나 화려하게 조명을 받았겠지?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걸 잘 알고는 있지......
하지만, 내 손 안에서 찰그닥 찰그닥 조용한 소리로 이야기하는 이 친구가 참 마음에 든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깐 비를 피하면서 다시 OM-4 를 만져본다.
좋은 주인 만나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이 친구에게도 영광일텐데......
아침비가 갈등처럼 내린다.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가을의 기도' 中)
(200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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