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에도 해는 동쪽에서 떠올랐다.
아니, 사실은... 아니다.
오늘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이곳의 비는 무척이나 차거워서 아침 기온을 섭씨 10도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첫째 녀석은 새학교 첫날인 내일,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학교까지 비 맞고 갈까봐 우산을 찾느라 난리고, 둘째 녀석은 겨울에나 입을 fleece 쟈켓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다.
계절이 어떻게 돌아가는건가???
지구 온난화 확실한거지? ^^

무얼 하면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8월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집 정리와 아이들의 전학관계와 그동안 소홀했던 사업장에도 빈번히 얼굴 내밀며 굽은 것은 펴고 맺힌 것은 푸는 일에 조금 바빴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름내내 쩍쩍 갈라진 마른 논바닥처럼 머리 속에서 메말라버린 생각들에다 설상가상으로 생각의 실타래를 풀기보단 굴리며 노는데 치중한, 참담한 여름이었음을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그간 얼마나 많은 여름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무의미하게 보내졌던가?
하루하루 먹고 자고 싸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오지 않았던가.

난 작가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원고마감시간을 지켜야 하는 프로글쟁이도 아니다.
그냥 있든 없든 머리 속에 든 생각을 때때로 글로 쓰고 포스팅하는 신출내기 블로거일 뿐이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대한 목마름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어처구니 없는, 주절거림에 대한 중독은 아닐까?
글 하나 쓰지 않고 지낸, 지난 보름간 금단현상으로 인해 내 손이 떨렸었던가?
손은 떤 적은 없어도, 먹어도 뭘 덜 먹은 느낌, 잠을 자도 잠을 덜 잔 느낌, 싸더라도 뭔가 석연치 않은 궁금함이 뒤에 남은 느낌에서 항상 떠날 수 없었던 건 부인할 수가 없는 진실이다.

예전에 무길도한량을 아껴 경영수업을 시키시려던 아버지 친구분이 계셨다.
한번은 점심을 함께 하시면서 말씀하시길,
"내 칠십 평생에 원하는 거 다 해보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꼭 한가지 못해서 죽을 날에도 서러워할 것이 하나 있다."
"?" (밥 먹느라 눈빛으로만..--)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만주에서 한국에서 떠돌아다니던 내 생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게 말이다. 글로 써도 책 두어권은 될텐데..."
"..."
"너는 후제 네 이야기를 틈틈히 기록으로 남기도록 햐."

그 분의 눈빛, 그 분의 말씀을 난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하늘나라에도 인터넷이 있다면, 그 분도 나의 글을 읽으실텐데...
아저씨, 야후에다 무길도한량이라고 척 치시면 제 블로그가 나와요... ^^
쓰다보니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갔는지, 아니면 축축하게 비 오는 날이라 그 분과 함께 먹던 뜨끈한 일본우동 생각이 먼저 났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
여의도 회사 근처의 K 일본식당의 우동을 유난히도 좋아하셨는데...
"야아-, 우동 먹으러 가자. 내가 사줄께..."
하시던 목소리가 항상 내 귓가에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무길도한량의 변변치 않은 글도 재미라고 열심히 읽고, 기다리고, 토 달아주시는 독자들도 계시다.
정겨운 이웃들처럼 미주알 고주알 말씀해주시는 여러 블로거님들...
밝은 모니터 빛에 눈 꿈뻑거리며 읽어주시는, 고희가 내일 모레이신 아버지 어머니...
천리타향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집사람, 우리가족들...
특히 점점 머리가 커져가는 우리 두 지지바들...
블로그엔 아빠의 어릴적 이야기가 있고, 가족들의빛 바랜 흑백사진이 있고, 잊혀져가는 한국의 시대상이 담겨 있다고 아이들에게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 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
그럼, 꾀 부리지 말고 열심히 써야겠지? --;;
창밖엔 여전히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비가 주절주절 내리고 있다.

(20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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